영어 잘하는 교사보다 학생이 영어 쓰게 하는 교사 필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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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호 14면

진경애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외국어교육학회 부회장이며 한국외국어대 영어학과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진 박사는 `국가영어능력시험개발`과 `영어교육혁신방안`에 대한 공로로 두 차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신인섭 기자

영어 능숙도 향상을 위해선 영어로 가르치고 배우는 게 효과적이다. 공교육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 수업(Teaching English in English·TEE)’이 가능한 교사를 다수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 서울시교육청은 초·중·고 영어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TEE 인증제’ 모델을 지난달 개발해 2학기부터 도입한다. 인증을 위한 시험은 8월에 실시된다. TEE 인증제의 도입으로 영어로 진행하는 초·중·고 영어 수업이 점차 확대될 예정이다.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 인증시험 개발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진경애 박사

8월부터 영어 교사 상대 인증 시험
영어로 영어 수업을 진행하는 게 가능하다는 인증을 받으려는 영어 교사는 ‘Teaching Knowledge Test(TKT)’와 ‘Teaching Practice Test(TPT)’를 통과해야 한다. TKT는 영어교수법, 영어교육학, 영어학 관련 지식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TPT는 실제 영어 수업 진행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SMOE TEE Certificate(서울시교육청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수업’ 인증서)’라는 명칭의 인증서는 낮은 등급인 TEE-A(Ace)와 높은 등급인 TEE-M(Master)로 발부된다. 응시 교사는 8월에 처음 실시될 TKT와 TPT에 응시하기 전에 일정한 교육 경력과 영어 연수 시간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다. ‘TEE 진단평가 도구’라고 불리는 TKT와 TPT를 개발한 연구책임자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진경애 선임연구위원이다.

1998년 설립된 한국교육과정평가원(김성열 원장)은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의 교육과정을 연구개발하고 각종 학력평가를 연구·시행하는 기관이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진경애 선임연구위원을 15일에 만났다. 진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외국어대에서 영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석사(언어학)와 박사(영어교육학) 학위를 받았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TEE 인증제’와 인증에 필요한 시험을 개발한 이유는 무엇인가.
“서울시 교육청과 교육과학기술부는 영어 공교육 강화 프로그램을 심도 있게 추진해 왔다. 영어 관련 사교육비를 경감시키고 영어 교사의 교과 전문성을 높여 학부모의 신뢰를 높이는 것도 인증제의 목적 중 하나다. 원어민 교사 채용도 확대하고 있지만 결국 교사의 능력 제고에 영어로 가르치는 영어 수업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게 오랜 논의 끝에 내려진 결론이다. 대다수 교사가 몇 년 안에 인증을 받고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을 잘할 수 있게 끌어 올린다는 게 목표다. 평가 기준이 없으면 힘들다. TEE 인증제는 초·중·고 영어 교육계를 ‘끌고 가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영어 수업 능력은 교사들이 일단 다 갖춰야 한다는 게 정책 방향인 것으로 알고 있다.”

-원어민이 진행하는 원격 강의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원격 수업이 예상보다 효과가 없다. 영어 말하기 학습에는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일대다(一對多)의 상황에서는 상호작용이 힘들다. 게다가 교사·학생 간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생 간의 상호작용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선 학생 수가 너무 많아 영어로 하는 수업이 힘들다는 의견이 있다. 물론 학생 수가 적을수록 유리하다. 그러나 스웨덴 등 유럽의 경우에도 한 반에 40명 정도의 학생이 있다. 4~5명 정도로 구성된 조를 짜고 과제를 수행하게 하는 수업이 잘 진행되고 있다. 수업 중 영어로 말하는 활동을 많게 하는 게 핵심이다.”

-영어교수법에 대한 지식을 평가하는 TKT가 인증에 필요한 이유는?
“교사의 영어 능숙도도 중요하지만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영어 교수법, 언어학, 영어교육학의 지식도 매우 중요하다. TKT를 준비하면서 교수법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TKT 시험 준비에 필요한 지침서가 있는지.
“아직 없다. TKT 문항은 일반적인 연수를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을 묻는다.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으면 개발할 것이다.”

-TPT는 무엇을 보고자 하는가.
“응시 교사가 실제 수업을 하고 평가위원들은 평가지에 따라 교사의 수업 진행 숙련도를 평가한다. 교사가 학생들의 발화와 글쓰기를 얼마만큼 잘 유도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교사의 영어 구사능력, 영어 의사소통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능력을 평가한다. 최신 교수법을 습득한 전문성이 있는지도 평가한다.”

-학생들이 하는 질문 내용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achievement와 accomplishment는 어떻게 다른가요?”라든가 “여기에는 왜 관사가 없나요?” 등등 말이다. TPT는 이런 질문에 대한 교사들의 대답도 평가하나.
“한다. TPT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 중 하나는 질문을 받았을 때 얼마나 자연스럽고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느냐다. TPT에는 학생들도 참가시킬 것이다. 외워서 수업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게 아니다. 상호작용이 중요한 것이다. 완벽하게 매끄럽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원하는 것에 답변할 수 있어야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영어로 하는 영어 수업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의견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개발 과정에서 살펴보니 영어 수업 방법론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을 뿐이다. 선생님들의 능숙도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 교사들은 교대·사대 입학, 임용고시 등 여러 단계를 통해 영어 능숙도가 검증돼 있다. 핀란드는 우리나라보다 영어를 훨씬 잘하는 나라다. 출장을 가서 보니 교사들의 영어 능숙도가 예상보다 낮았다. 그러나 영어로 하는 수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방법론상의 문제, 영어 수업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핀란드의 경우도 영어는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하는 언어다. 50대 이상은 영어를 잘 못한다. 영어 능숙도 제고를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뒷받침했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게 된 것이다.”

영어로 영어수업, 몰입교육 아냐
-TPT 시험 결과는 누가 평가하나.
“TPT 개발에 참가한 현장 교사들이 평가위원이 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개발에 참가한 교사들은 평가 항목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시험 개발에 핵심적인 수준 설정(standard setting) 절차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평가위원이 결정되면 평가의 일관성과 신뢰도 확보하기 위해 정기적인 훈련이나 점검이 필요할 것이다.”

-시험의 변별력 시비는 없을까. 예를 들면 TEE-M을 받은 선생님보다 TEE-A를 받은 선생님이 낫다는.
“실제로 수업을 잘 진행하는지 아닌지를 평가하기 때문에 변별력이 높을 것이다.”

-TPT 결과와 TOEIC·TOEFL·TEPS 등 다른 시험의 상관관계표를 작성하는 게 가능한가.
“가능하다. 선생님들이 영어 인증 시험 점수를 대부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시험으로 인증을 대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일반 영어 시험 점수가 높다고 해서 영어 수업을 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TEE 인증제에 대한 초기 반응은 어떤가.
“필요성을 공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TEE 인증제는 참가 교사들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이번에 개발된 인증제는 논란이 되었던 몰입교육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가.
“관계가 없다. 몰입교육은 영어 외에 다른 교과를 영어로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를 영어로 가르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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