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고도 다른 한강의 기억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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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호 34면

여러 가지 조건이 바뀌어도 친숙한 대상은 항상 똑같이 지각되는 현상을 항상성이라고 한다. 공간을 경험할 때 물체의 크기·모양·빛깔 또는 소리를 들은 거리, 빛의 밝기와 조명 방식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겠지만 생리적 자극과는 관계없이 항상 같게 지각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에 의한 소중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마치 딸기에 푸른색 조명을 주고 이미지의 변신을 꾀하지만 그래도 내게 맛있는 딸기는 여전히 빨간색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하루 걸러 쏟아지는 장대비로 인해 얌전하기만 했던 한강이 성난 군중 같은 모습으로 소란스럽게 한바탕 흐르는 강변을 찾았다. 누런 흙탕물이 지나는 자리에서 혹시나 하며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 자리를 펴고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 등등.

이제 막 새로 단장돼 새 옷을 입은 공간과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인 공간이 혼재돼 마치 흙탕물이 흐르는 강물과 같은 모습이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다양하게 한강을 만나고 있었다. 화려한 새 옷에 익숙지 않아도 사람들은 예전의 소박한 장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공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방향을 바꿔 노들섬 쪽으로 향했다. 자전거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품었지만 그래도 강을 끼고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은 비어 있는 그러나 앞으로 몇 년 후면 이곳에 또 다른 모습이 그곳에 펼쳐질 것을 상상해본다. 한강은 늘 같은 한강인데 자꾸만 변하고 있는 것이다.

한강 예술섬-노들섬 오페라 하우스! 섬 속의 자연을 바라보니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세월의 체취가 묻어났다. 예전엔 모래사장도 있었다는데 그곳엔 얼마 후 예술을 담은 인공구조물이 들어선다. 우리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 중 하나인 춤을 주제로 한 형태가 만들어지고 있다. 디자인 작업 결과로 물리적 형태의 건축물들이 일단 들어서게 되면 그것은 인간 행위를 유발하는 행태 장치로 작용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행태 장치들은 사용자에 대해 강제적인 성향이 있다. 그것이 사회성을 띠는 구조물이면 더욱 강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디자인은 시스템을 통한 지원을 계획하되 기능성과 효율성을 넘어 미적 감성이 축적되고 만들어지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세월의 기억 속으로 녹아들어야 한다.

이렇듯 자연의 무궁무진한 변화와 그에 순응하는 물리적 환경을 만들면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항상성 원리에 의해 늘 변함 없이 같은 모습으로 인지될 수 있다.

4대 강 정비사업은 이렇듯 다양하게 변화되는 한강을 중심으로 물길을 늘리고 다듬어 다른 강과의 연대를 도모하려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시작부터 대단하다.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며 조건을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의 강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환경적 조건은 언제나 바뀌고 있었다.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무관심으로 생기는 물의 넘침과 모자람은 우리를 항상 긴장하게 만들었고 그 시간들을 기억하게 하였다. 가장 중심 이슈가 될 수중보의 역할은 물리적 환경 구축 기능을 넘어 미적 향수를 담은 행태 장치가 돼야 한다. 환경 조건들이 계속 바뀔지라도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다양한 기억들을 담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빛은 강제적 행태 장치들을 심미적 경험의 욕구로 충족시킬 수 있는 지원 장치로 역할을 해야 한다. 강의 물리적 조건이 바뀌어도 항상 같은 모습으로 지각할 수 있는 조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사용자 모두의 다양한 행위를 자연스럽게 서로 나누고 연출할 수 있는 창조적 개념의 빛을 준비해야 한다.

신소재 LED 광원을 통한 기술력을 향상시키고 주변 공원과의 연계성을 높이는 통합 디자인을 계획한다면 창조적 라이프를 위한 지각의 항상성을 유도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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