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 아파트를 보는 명쾌한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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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우리 학계는 통이 큰 편이다. 관심은 계급구조·세계체제·민족문제 같은 주제에 쏠려있다. 일상세계에는 눈길 주지 않는다. 학계가 전장화(戰場化)하고 황폐화되니 ‘배우고 때로 익히는 일’이 즐거울까?” 지난 주 ‘상반기 내 마음의 책’을 소개해드렸는데, 그 다섯 권 중 마지막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엄숙주의 학문 풍토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자기반성이다. 전상인의 『아파트에 미치다』가 문제의 책인데, 다음의 정문일침도 인상적이다. “우리 학계는 스토리가 부족하고 디테일이 취약하며 모국어의 미학 또한 아쉽다.”

전상인은 누구인가? 서울대 교수인 그는 『한국현대사-진실과 해석』 『고개 숙인 수정주의』를 펴내온 중견이다. 그럼 이 책은 본업을 제쳐둔 여기(餘技)이자 한담일까? 그렇지 않다. 중앙일보에도 크게 소개됐던 『아파트에 미치다』는 디테일이 살아있고, 전에 없는 아파트의 사회문화론을 다룬 첫 책이다. 즉 아파트의 역사·특징에서 그 안의 한국인의 의식변화를 추적한다. 아파트야말로 한국사회를 해석해내는 블랙박스라는 시각이다.

일테면 한옥은 사랑채·안채·별당이 구분되는 사대부 중심의 성리학적 질서를 구현했다. 아파트는 그게 사라진다. 남성 공간 축소 대신 부엌이 주방으로 격상됐고 시스템키친으로 진화 중이다. 문단속이 쉬워 여성 나들이도 잦아졌다. 복부인이라는 말처럼 아파트 매매를 주도하는 여성의 발언권도 높아지는 등 가족의 권력구조 변동을 주도해왔다. 이토록 흥미진진한 ‘의미의 황금어장’ 아파트를 왜 학계는 외면해왔을까? 이 분야의 박사학위 논문도 2005년 프랑스인이 처음 썼단다.

혹시 우리는 재테크에 열중하면서 “아파트쯤이야”하며 거룩한 학문은 따로 알아온 게 아닐까? 그거야말로 ‘학문 따로, 생활 따로’의 이중의식이다. 현실적으로 아파트인구가 52.7%로 세계 최고다. 아파트를 현대 주거공간으로 끌어올린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꿈이 이 땅에서 열린 것이다. 오해 마시라. 아파트가 최고라는 게 아니다. 잿빛 시멘트덩이는 여전히 흉물스럽고(미학적으로), 썰렁해서(몰개성이라서) 대안의 생활공간을 찾는 게 우리 몫이다.

하지만 인구밀도 등의 이유로 지구촌 유일의 ‘아파트 공화국’을 만들어냈다면 엄연한 분석대상이다. 그걸 외면한 채 바다 건너 저쪽의 이야기를, 그것도 낯선 외국이론을 빌려다가 무한 반복하는 ‘수입 완제품 학문’이란 보기에 민망스럽다. 진짜배기 학문이란 지금 여기의 우리네 삶을 보듬으면서 새로운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아닐까? 그래야 학문에 생기가 돌고, 사람냄새도 풍긴다. 하반기에는 『아파트에 미치다』처럼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과학, 좀 더 따뜻한 책을 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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