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출신 내세워 검찰 장악 나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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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28일 교체됐다. 후임엔 검찰 출신으로 법무부 차관을 지낸 김승규(60)변호사가 임명됐다. 검찰 개혁의 특명을 받고 입각했던 강 장관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갈등도 많았다. 따라서 그의 퇴장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이 새로운 검찰 운용 구상에 착수했음을 보여준다는 게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청와대가 이제 검찰을 장악하려느냐가 관심의 초점이다. 향후 정국 향배와 직결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특히 강 장관이 검찰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기에 더욱 그렇다.

노 대통령은 22일 법무부 장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다. 일주일 가까이 나름대로 진지한 내부 논의가 있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김승규 장관이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법무부 장관 교체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검찰 재정립, 검찰 인사 쇄신 등 강 장관이 그동안 수행했던 역할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 역할론이 집권 2기를 맞아 달라졌다는 의미다. 정 수석은 "신임 김 장관은 법조계의 신망이 두터워 잘 이끌어갈 것"이라고 했다.

김 신임 장관은 조각 당시 강 장관과 함께 법무부 장관 후보로 경합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데다 합리적인 학자풍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호남(전남 광양) 출신이지만 검찰 내 영남 인맥에서도 평판이 좋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강 장관을 고집했다. 집권 초 '검찰 독립, 인사 쇄신'을 위해선 원만한 장관형보다 '민변 출신의 개혁가'가 필요했다. 강 장관도 이에 부응했다. 인사, 제도 쇄신을 밀어붙였다. 검사 동일체 원칙을 수정하고 검찰 단일호봉제로 직급을 폐기했다. 평검사가 참여하는 검찰인사위를 구성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검찰 내 황태자 그룹은 강 장관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지만 강 장관은 평검사의 마음을 잡았다"고 했다. 한총련 수배 해제 조치, 송두율 교수 처리 등 각종 사안에서 강 장관과 검찰의 갈등이 불거졌지만 노 대통령은 강 장관에게 변함없는 힘을 실어줬다. "검찰에 점령당했던 법무부의 감독 기능을 살리고, 검찰은 수사기관의 독립성만 보장하라"는 지시를 뚝심 있게 밀고 간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후반기 정치자금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묘한 국면이 전개됐다. 대통령 측근들이 검찰의 집요한 수사를 받았다. 그러자 "지나치게 검찰의 고삐가 풀렸다"는 청와대의 푸념이 불거졌다. 노 대통령 또한 공.사석에서 "야권과의 기계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우리 측 사람들은 백만원 단위까지 뒤지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나 '검찰 독립'을 화두로 설정한 청와대는 별다른 수단이 없었다. 법무부 장관의 조율 역할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 장관은 '제도적 개혁'의 역할만을 충실히 수행할 뿐이었다. 대검 중수부의 폐지설이 나왔다. 고위 공직자 비리조사처 신설 방침이 확정됐다. 그러면서 검찰 조직과 강 장관 사이에 불협화음이 들렸다. 송광수 검찰총장의 강경 발언도 튀어나왔다. 강 장관의 검찰 장악에 대한 의문이 여당과 여권 핵심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법무부 장관의 새로운 역할론으로 진화됐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28일 법무부 장관 교체와 관련, '대통령의 검찰 장악'이란 표현엔 손사래를 쳤다. 검찰 독립의 원칙은 유지된다는 설명이다. 다만 검찰에 대한 제도 개혁이 마무리된 만큼 이제 운용의 개혁을 기할 때란 설명이다. 장관의 역할을 바꿔야 할 시점이란 것이다. 한 관계자는 "강 장관이 마련한 검찰 개혁의 토대를 안정적으로 착근시키고, 검찰과의 관계가 원만해 통솔력이 강화될 법무부 장관의 기용으로 검찰과의 호흡, 주파수를 맞추겠다는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 국방부 장관.통상교섭본부장 교체=노 대통령은 28일 국방부 장관에 윤광웅(62)대통령 국방보좌관을 임명했다. 장관 대우인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엔 올해 45세의 국제변호사 출신인 김현종 외교부 통상교섭조정관을 승진 발령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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