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권진규·박생광·장욱진전 가나아트서 2일부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73년 5월4일 오후5시. 조각가 권진규는 서울 동선동 10평 남짓한 그의 집이자 아틀리에에서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그리고 85년 7월18일 새벽4시. 병든 몸 (후두암) 을 아들에 의지해 붓을 잡았을 정도로 말년에 결사적으로 그림을 그렸던 화가 박생광은 미완성 그림을 수북이 남겨놓고 서울 수유리집 화실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다.

장욱진은 90년 12월27일 점심식사후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한국병원으로 옮겨진 뒤 그곳에서 오후4시경 숨을 거뒀다.

이승을 거쳐간 세월의 폭은 달랐지만 세사람 모두 예술혼을 위해 자신을 남김없이 불사른 치열한 삶을 살았다는 점은 같았다.

그래서 이들은 지상을 떠나 곧 근대미술의 하늘에 별이 됐다.

하늘에서 지남 (指南) 이 된 이들의 별빛은 땅에 닿으면 진한 향기로 바뀐다.

서울 인사동에서 최근 평창동으로 이전개관한 가나아트센터 (구 가나화랑) 는 개관기념전으로 이들 세사람 거장들의 향기를 재음미하는 전시를 마련했다.

2일부터 20일까지. 02 - 3217 - 0234. 권진규 (1920~73) 는 아틀리에 벽에 '범인에게 침을, 바보에게 존경을, 천재엔 감사를' 이라고 붙여놓고 끊임없이 초월의 길을 탐구한 작가.

이번 전시에는 지난 6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갔던 '서커스' 연작 부조와 초기의 동물 조각 그리고 70년 전후부터 작업한 인물두상까지 테라코타 작업 (흙을 구워 만든 조각) 60여점이 소개된다.

유화작업과 스케치도 소개돼 과작의 작가로서는 회고전에 버금가는 규모다.

권진규는 부르델의 제자였던 시미즈 다카시 (淸水多嘉)에게 배워 말하자면 근대조각 정통계보의 세례를 받은 작가다.

박생광 (1904~85) 은 험난했던 인생역정처럼 작품 속에서도 거칠며 강한 색채작업을 남겼던 거장. 젊은 시절 일본화의 본고장 교토에서 수업해 일본채색화의 영향을 받았다.

80년대 들어 그는 마치 다른 사람으로 소생한 것처럼 일변했다.

그 내용이 이번에 소개되는 무속과 한국 전통설화를 소재로 한 강렬한 색채화다.

그중 하나인 어릴 적 친구 청담스님을 그린 대작은 구도의 길에서 빛을 발하는 영광과 장엄함을 극채색의 세계로 보여주고 있다.

장욱진 (1917~90) 의 만년작은 먹그림. 최근 그의 지인들이 먹그림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책자를 발행한데 이어 실물을 소개하는 전시다.

나무를 깍아내듯 일상의 군더더기를 털어낸 단순명료한 삶을 살았던 화가처럼 그림 역시 간결하면서도 파격적인 발상으로 선화 (禪畵) 의 경지에 들어선 모습을 보여준다.

거장들의 작품에서 향기가 난다는 것은 삶이 순수했던 만큼 작품도 투명함 속에서 인간의 크기와 넓이를 전해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