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8월 그리고 50년]다시 가 본 그날 26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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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나라 밖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작금의 미.소 관계도 그중 하나. 며칠전 뉴욕주재 소련 영사관에서 '코센키나 여사 망명사건' 이 발생하자 소련측이 그 보복으로 '뉴욕.샌프란시스코 주재 영사관 폐쇄' 를 통보. 이에 질세라 미국도 '블라디보스토크 영사관 철수' 로 맞서면서 총성 없는 외교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미.소.영.불 네 나라가 '베를린의 4국 관리를 부활' 시켰고 미국은 미군정 기간중 국방부에서 맡아 왔던 대한 (對韓) 정책을 국무부로 이관키로 했고. 나라 안 사정도 만만치 않다.

대구 갑부 李모씨. 나병 (癩病) 으로 고생중 부인이 공동묘지에서 두살짜리 여아 (女兒) 시체를 꺼내 와 술에 담가 먹인 전대미문의 '식인 (食人) 사건' 이 발생, 민심을 더욱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

전직 미군정청의 한 고관. 가족.친지들을 불러다 놓고 한강에서 물놀이하는 것까진 좋았는데 자신의 '위세' 를 한껏 과시하고 싶었음일까. 강 주변에 수십명의 무장경관까지 배치해 놓았다.

이를 지켜본 시민들은 그저 할 말을 잃었고. 그런 요지경 (瑤池鏡) 을 국제신문은 큼지막한 삽화로 그려 고발했다.

중앙관상대가 모처럼 기상특보를 발표하자 신문들도 '남해안에 SOS - 폭풍 재습 (再襲) 경계하라' 며 사회면에 큼지막한 박스로 처리했다.

화재가 빈발하던 차 '무명 청년이 화재 속보기 (速報機.경보기) 를 발명' 했다는 기사는 오늘의 낭보. 경기도양주의 20대 청년 두명이 1년 7개월 만에 올린 보기 드문 개가.

사건.사고 빠질 리 없다.

국립화학연구소는 '후루텍신' 파문이 계속되자 문제의 주사약을 실험용 쥐에 주사한 결과 15마리중 4마리가 한시간 이내에 죽었다며 '과연 유독' 하다고 최종 판정. 서울~경주 노선 (京慶線)에 벌써 아홉번째 탈선사고가 발생, 신문에선 '경경선' 대신 아예 '마 (魔) 의 철도' 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서울운동장에서는 수백만의 인파 속에 하지 중장 환송대회가 조병옥 (趙炳玉) 위원장 사회로 성대히 열렸다.

군정 3년을 마치고 떠나는 그에게 이범석 (李範奭) 국무총리는 자신이 청산리 전투 당시 왜장을 무찌르고 노획한 일본도 (日本刀) '사다무네 (貞宗)' 한자루를 선물로 전달.

국회도 감사장과 함께 고려자기 2점을 선물. 극장 단성사에선 '불량아 짠' 이라는 연극이 연일 초만원을 이루자 악극단측 (大都會) 은 예정에 없던 전국 순회공연을 발표하기도.

서울신문은 다음달 1일부터 '타블로이드판 석간 4면 체재' 로 지면쇄신을 단행하겠다고 사고 (社告) .이에 따라 구독료도 '본의는 아니나 부득이' 월 3백원으로 올리겠다고. 그래저래 어수선한 가운데 평화일보는 오늘자 사회면의 약 절반 가량을 할애, '여 (女) 의대생이 본 무의촌 (無醫村)' 이라는 제목의 좌담회 기사를 실었다.

그들이 확인한 현지 실태. '쌀밥은 1년에 세번 - 보리 겨로 죽 쒀 먹는게 전부' 인 마당에 '삶의 질' 은 멀고도 먼 나라 이야기.

김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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