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뚫고 경춘고속도로 마무리 점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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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15일 오후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서울~춘천고속도로 개통식. 5년여의 공사 끝에 61.41㎞의 고속도로가 뚫리는 날이었지만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직원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축사를 위해 단상에 오른 한승수 국무총리도 10일 순직한 박용교(52·사진) 전 서울지방국토관리청 도로시설국장의 명복부터 빌었다.

박 전 국장은 폭우가 쏟아지던 9일 직접 자신의 차를 몰고 현장 점검에 나섰다. 개통을 며칠 앞둔 고속도로 주변의 흙이 빗물에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가 없었다. 장대비가 너무 굵다는 부하 직원들의 걱정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의 차가 빗길에 미끄러진 것은 서울에서 춘천까지 고속도로를 한 바퀴 둘러보고 돌아오던 이날 오후 2시 40분쯤이었다. 서울에서 18㎞ 떨어진 월문3터널 입구에서 전광판 기둥을 정면으로 들이받은 차는 기둥과 중앙분리대와 끼었다.

119 구조대와 마침 인근에 있던 서울국토관리청 김태국 주무관이 달려왔지만 구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인근 병원에서 다시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옮기는 앰뷸런스 안에서 그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김 주무관에게 힘겹게 말을 건넸다. “이봐, 김 계장. 내가 가거든 마누라와 두 딸을 잘 부탁해.” 사고 11시간만인 다음날 새벽 그는 결국 눈을 감았다.

박 전 국장은 1980년 교통부에서 토목기사보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뒤 각 지방 국토관리청의 하천·도로시설국장으로 일해왔다. 동료들은 그를 지독하게 책임감이 강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서울국토관리청 김여해 도로계획과장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절대 그냥 넘기지 않던 분”이라고 말했다.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김 주무관은 “정말 열심이셨는데, 개통식도 못 보시고…”라며 울먹였다.

개통식이 열리던 15일 박 전 국장의 아내(49)는 휴대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화기에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라는 통화 연결 음악만 계속 흘러나왔다. 한참 뒤 대신 전화를 받은 맏딸(26·회사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고 자부심이 컸던 아빠가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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