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포인트 처리’ 뒤 여야 그대로 눌러앉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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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국회의장이 15일 레바논 파병 연장 동의안 처리를 마치고 본회의 산회를 선포한 건 오후 1시13분이었다. 그러나 여야 의원 수십 명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산회 뒤 부리나케 회의장을 벗어나던 평소와 달랐다. 한나라당 의석 쪽에서 “1열(맨 앞줄)부터 철수하자”(권택기 의원)는 등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마치 퇴장하려는 듯 민주당을 현혹시키려는 제스처였다. 이 말을 신호 삼아 안상수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앞자리로 옮겨 앉았다. 한나라당의 이런 행동은 민주당이 이날 오전 본회의 직후 점거 농성을 하기로 한 데 대한 맞대응이었다. 결국 한나라당 20여 명, 민주당 10여 명의 의원이 본회의장에 눌러앉았다.

15일 국회 본회의를 마친 여야 의원들이 김형오 국회의장의 산회 선포 이후에도 회의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안성식 기자]

이렇게 여야는 국회 본회의장 안에서 ‘어색한 동거’를 시작했다. ‘죄수의 딜레마’가 국회의 현실이 된 것이다. 한나라당이 언제 미디어법을 강행 처리할지 모른다는 민주당의 불신과, 민주당이 또 국회의장석을 점거하면 핵심 법안 처리가 물 건너간다는 한나라당의 불안이 겹친 결과였다.

75일 만에 다시 열린 본회의에서 18대 국회는 ‘여야 본회의장 동반 점거’라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또 하나 작성했다. 제헌절 61주년을 이틀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사태를 예견한 듯 김 의장은 안건 상정에 앞서 긴 당부의 말을 했다. 그는 “나라를 세운 제헌의 아버지들이 지금 우리 국회의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지 정말 두렵다” 고 말했다. 김 의장의 당부도 여야 사이에 높이 쌓인 불신의 벽을 뚫진 못했다. 안건 처리 뒤 이어진 5분 발언부터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민주당 우윤근 원내수석부대표는 “임시국회를 25일까지만 하겠다는 건 언론 악법을 직권상정해 강행 처리하겠다는 뜻임을 삼척동자도 다 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손범규 의원은 “미디어법은 독과점 폐해 방지법”이라며 “반대하는 건 현재의 독과점 구조의 단물을 빨아먹겠다는 수구적 사고”라고 비판했다. ‘어색한 동거’는 장기화할 분위기다. 오후 양당은 각각 의원총회를 열고 소속 의원을 한나라당은 40여 명씩, 민주당은 20여 명씩 3개조로 나눠 무기한 밤샘 농성을 하기로 결의했다. “각 당 10명씩만 남기자”는 민주당의 제안마저 한나라당이 거부한 결과다.

◆돌아온 정동영=이날 본회의에선 무소속 정동영·신건·정수성 의원과 민주당 홍영표 의원,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등 지난 4·29 재·보선 당선자들이 의원 선서를 했다. 정동영 의원은 “국민들이 의지하고 기댈 곳은 이곳 의사당이고 정치”라고 인사말을 했다.

국회는 본회의에서 안상수 운영위원장(한나라당 원내대표·의왕-과천·4선), 이종걸 교육과학기술위원장(민주당·안양 만안·3선), 심재철 예결특위위원장(한나라당·안양 동안을·3선), 이한구 윤리특위위원장(한나라당· 대구수성갑·3선) 등 4개 위원회 위원장 선출안을 각각 처리했다.

임장혁·허진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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