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관 부인 명품 산 자료까지 … ” 보좌진도 경악한 박지원 정보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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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청문회가 열리기 전날인 12일 밤 10시. 일요일임에도 민주당 박지원(목포·재선)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 있는 자신의 의원실을 찾았다. 그는 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던 보좌진에게 서류 뭉치를 건네며 “잘 정리해 놓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서류 뭉치를 살펴 본 보좌진들은 깜짝 놀랐다. 천 후보자의 출국기록과 고급 면세품 구입 목록 등이 망라돼 있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의 측근은 “그 속에 필요한 자료들이 다 있었다”며 “도대체 어떻게 구했는지는 우리도 전혀 모른다”며 혀를 내둘렀다.

천 후보자 낙마에 결정적 역할을 한 건 박 의원의 정보력이다. 그는 천 후보자가 신사동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15억5000만원을 빌린 사업가 박모씨와 골프여행을 떠난 것은 물론, 천 후보자 부인의 명품 구매 기록 등을 낱낱이 공개했다. 천 후보자 아들의 호텔 결혼식과 위장전입 사실도 밝혀냈다. 이러한 그의 활약에 한나라당 의원들마저 “어떻게 그렇게 꼼꼼하게 준비했느냐” “어느 쪽이 검사인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그의 ‘정보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박 의원이 “제보자 보호” 등의 이유로 철저하게 숨기기 때문이다. 과거 야당 시절과 김대중 정부 때 구축한 폭넓은 인맥과 외곽의 지인 그룹 덕분이었다는 관측이 국회 주변에 나돌 뿐이다. 그의 주변에선 “보좌진들도 공식행사 외에는 박 의원이 누구와 점심을 먹는지조차 모른다” “운전기사에게도 약속시간 1시간 전에야 행선지를 밝힐 정도로 잠행하는 스타일”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가 이번에 제기한 내용들로 볼 때 경찰이나 국정원 관계자는 물론 항공사·면세점·백화점·교육계 등까지 폭넓게 인맥이 뻗어 있는 것 같다는 게 주변의 추정이다. 박 의원은 심지어 “후보자 부인이 명품 속옷을 산 자료까지 입수했는데 관세청에서는 거짓 자료를 줬다”고 말해 그의 정보력을 실감케 했다.

그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발로 뛰는 성실함으로 DJ의 신임을 샀다. 그는 DJ는 물론 접촉하는 사람들과 나눈 대화의 토씨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하게 기억했다 기록하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이런 특유의 스타일이 이번과 같은 결정적인 폭로를 가능케 했다는 분석이다.

이 밖에 유선호 국회 법사위원장, 박영선·이춘석·우윤근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과의 ‘분업’도 효과를 발휘했다. 박영선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법사위원들이 ‘기승전결’로 역할을 분담했는데 이춘석 의원이 기조를 깔면 저와 박지원 의원이 ‘승’과 ‘전’을 나눠서 했다”며 “우윤근 의원은 점잖은 일을 하고 저와 박 의원은 악역을 자처했다”고 소개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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