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구멍 난 청와대 인사시스템 정비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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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어젯밤 “이번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책임을 통감하고 공직후보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청와대도 이를 수용키로 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천 후보자 내정 이후 제기된 각종 의혹들로 그가 과연 대한민국의 사정 총수로서 자격이 있는지 매우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를 통한 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고가 아파트 구입 자금의 출처와 타인 명의로 된 고급 승용차의 무상 사용, ‘스폰서’와 함께 했다는 명품 쇼핑 여행 등의 의혹과 관련해 명쾌하게 해명이 이뤄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자녀를 좋은 학군에 진학시키기 위해 위장 전입을 하는 등 천 후보자 스스로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을 인정해야 했을 뿐이다. 천 후보자의 주장대로 순수하게 주택 구입 자금을 빌린 것이라고 치자. 하지만 차용증도 없이 거액을 빌려주는 등 편의를 봐준 사업가가 어떤 청탁이라도 한다면 쉽사리 거절할 수 있겠느냐는 점을 감안할 때 검찰 고위직으로선 적절한 처신이 아니었다. 좋은 학군으로 자녀를 진학시키기 위한 위장 전입도 일반 국민의 행위에 비해 사안이 훨씬 중하다. 자녀 결혼식이 열린 6성급 호텔을 “조그만 교외”로 언급한 대목도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크게 자극한 신중치 못한 발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천 후보자가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더라도 국민 정서를 고려해 검찰총장 후보직을 자진 사퇴한 것은 국론 분열을 막고 사회적 갈등의 소지를 제거한다는 측면에서 현명한 결정이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또 심기일전해서 국정 쇄신의 전기를 모색하려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차원에서도 그렇다. 가뜩이나 갈 길 바쁜 대한민국호가 엉뚱한 대목에서 발목에 잡혀 허둥지둥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해프닝을 사전에 막지 못했던 청와대의 부실한 인사 검증 시스템은 호된 질타를 받아 마땅하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허술한 검증으로 ‘강부자’ ‘고소영’ 등 각종 신조어를 초래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등 그토록 곤욕을 치르고서도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는 점이 이번에 여실히 드러났다. 정권에 대한 우려를 넘어 분노를 자아낼 정도다. ‘인사가 만사’란 경구를 새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인사만 잘 해도 절반은 성공한 정권이 된다.

그럼에도 인사를 할 때마다 국민적 조롱을 받고, 치르지 않아도 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국민에게 부담시키는 정부를 어떻게 제대로 된 정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검증을 소홀히 한 청와대 관련자들을 이번엔 반드시 문책해야 한다. 정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이 너무 피곤해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번 해프닝을 반면교사로 삼아 향후 개각 등에선 인사 검증 시스템을 더욱 치밀하게 다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