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차 기러기 아빠 이만기의 예능 적응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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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천하장사 타이틀을 10번이나 거머쥐었던 ‘모래판의 황제’ 이만기. 스스로를 ‘80년대 브랜드’라고 낮춰 말하지만, 그는 요즘 방송 3사에서 활약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왕년의 스포츠 스타에서 예능 프로그램의 감초로, 그리고 교수로, 또 기러기 아빠로 평범하게(?) 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지금 나를 인터뷰할 게 뭐 있능교? 난 씨름인인디…"

“지금 나를 인터뷰할 게 뭐가 있능교? 천하장사일 때면 몰라도….” 전화기 너머로 이만기(46)의 친근한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왔다. 겸손하게 대답했지만, 그는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다. KBS ‘비타민'과 ‘스펀지2.0’에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이고 MBC ‘세바퀴’에서도 러브콜을 받을 만큼 인기다. 경남 김해에서 아침 10시 비행기를 타고 올라와 막 서울에 도착한 그를 만났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오다 보니까, 이제는 서울 오는 게 옆 집 놀러가는 것처럼 쉽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얼마 전까지 20대 친구들도 나를 못 알아봤는데, 이젠 초등학교 아이들이 ‘천하장사 이만기 아저씨’라고 부른다”며 요즘 부쩍 늘어난 인기를 실감하고 있단다. 하지만 처음에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씨름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야겠다는 목표를 갖고 방송을 시작했다”고 거리낌없이 말한다. 한때 씨름 열풍을 일으킨 주역으로서 씨름이 잊혀져가는 현실에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면서.

“씨름을 살리려면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야 했어요. 은퇴한 지 19년이 됐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이만기’ 하면 ‘천하장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제 자신을 발판으로 씨름을 알리면 되겠다 싶었죠. 그런데 방송도 자꾸하다 보니까 재밌더라고요(웃음)”

후배 강호동이 ‘무릎팍 도사’에 나와 달라고 부탁했을 때, 선뜻 출연을 결정한 것도 오로지 ‘씨름을 많이 알릴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씨름 선수시절에 강호동이 가장 무서웠다”는 그의 솔직한 발언들 덕분에 ‘이만기편’은‘무릎팍 도사’의 전체 방송 중 시청률 2위를 기록할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그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시청률에 연연해하는가 했더니, “덕분에 씨름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었다”며 또다시 씨름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는 “나는 ‘예능인’이 아니라 ‘씨름인’이다”라고 못을 박았다.

예능 프로그램은 아직 부답스럽기도 하고…

“세바퀴 제작진이 고정 출연해 달라고 했지만, 거절했어요. 예능 프로그램은 아직 부담스럽기도 하고, 또 거기 나오는 분들이 워낙 드세잖아요(웃음). 전사람들이 말하는 예능감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시청자들이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경상도 남자 캐릭터와 제 솔직한 성격을 보고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구수한 입담으로 좌중을 웃기는 그지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는 위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쓴단다. 본업에 해가 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다. 현재 인제대학교 강단에 서고 있는 그는 프로선수 출신으로선 처음으로 교수가 됐다. 29세에 은퇴한 뒤, 지도자의 길을 가는 대신 공부를 선택했고, 마침내 중앙대학교 체육교육학과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가 됐다.

그는 “정말 원하는 꿈은 바라면 이뤄진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고 했다.

“원래 제자리에 머무는 걸 싫어해서, 항상 새로운 일을 벌인다”는 그는“도전을 많이 하는 만큼 실패도 잦다”고 고백했다. 17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지역구에 출마했다가 낙선을 했고, 3년 전에는 한국씨름연맹으로부터 영구 제명 징계를 받기도 했다. 직언을 많이 하는 그에게 연맹은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징계를 내린 것. 그는 ”정말 홀로 외롭게 싸웠지만, 그래도 비겁하진 않았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10년 전에는 공황 장애에 걸리기도 했어요. ‘갑자기 사고가 나서 내가 죽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비행기도 못 타고, 터널도 지나가지 못했어요. 심지어 엘리베이터도 못 탔으니까 일상생활이 전혀 불가능했죠. 집 밖에 나갈 때는 아내가 꼭 제 옆에 붙어 있어야 했는데,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잉꼬부부인 줄 알았을 거예요(웃음).”

그는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가족의 도움으로 다행히 6개월 만에 공황 장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단다.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지금 필리핀에서 유학 중인 아내와 두 아들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큰 아들은 치과의사를 꿈꾸며 치과대학을 다니고 있고, 작은아들은 대학 편입을 준비하는 중이다.

“남들은 ‘기러기 아빠라서 사는 게 재미없겠다’고 해요. 하지만 전 나름 대로 잘 지내고 있어요. 아내와 아이들이 당연히 보고 싶지만, 어쩌겠어요. 두 아들이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사실 요즘은 스케줄이 바빠서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어요. 오히려 잘됐다 싶죠(웃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씨름을 하기 위해 부모 곁을 떠나 지냈던 터라, 그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유별나다. 아내에겐 가정적인 남편, 두 아들에겐 친구 같은 아빠다. 이제 18세, 16세인 두 아들은 어느덧 아빠만큼 덩치가 커버렸지만, 가족이 모일 때면 늘 아빠 곁에 누워 잠잘 정도로 부자지간의 사이가 좋다. 그는 “두 아들과 함께 길을 걸을 때는 좌청룡, 우백호를 둔 것처럼 든든하다”며 웃는 얼굴로 자식 자랑을 했다.

베테랑 살림꾼이 된 경상도 남자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는 이제 살림하는 데 베테랑이 다됐다. 청소도 잘하고, 요리 솜씨도 꽤 좋단다. 그는 “한 번 정리해 놓은 물건은 건드리지 않으면 되고, 방과 목욕탕, 침대 등 동선을 딱 짜놓으면 집안이 어지를 일이 별로 없다”고 했다. 4년 차 기러기 아빠의 현실적인 조언이다.

건강 관리도 철저하게 한다. 아침마다 집 근처에 있는 산에 가 산악자전거를 한두 시간씩 타고, 저녁에는 배드민턴을 친다. 그는 “40, 50대 중년들은 잠깐만 방심해도 몸무게가 늘어난다”며 체중 관리에도 많이 신경 쓰고 있단다.

“매일 산에 갈 때마다 산을 오르는 것과 인생을 사는 것이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요.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라면 땀 흘리고, 때론 넘어지더라도 고통을 참고 견디죠. 그런데 막상 정상에 올라선 뒤에는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내려갈 채비를 하잖아요. 어차피 내려가야 하니까요. 그런데 내려가는 길은 올라간 길에 비해 너무나 쉽죠. 그래서 가끔 인생무상이란 생각도 들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실제로 정상에 올랐던 사람이기에 그의 말에는 힘이 실려 있다. 하지만 이제 산 밑의 풍경도 정상 못지않게 아름답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이야기하는 내내 그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인터뷰 말미에 한 청년이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알고 보니 큰아들의 어릴 적 친구란다. 약간 상기된 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아들의 친구를 보니 멀리 있는 두 아들이 저절로 생각났나 보다. “언제쯤 가족이 모일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당연하다는듯 대답했다. “10년 안에는 모두 돌아와 함께 살겠죠. 이렇든 저렇든 가족은 함께 있어야 더 행복하니까요(웃음).”

취재_지희진(객원기자) 사진_박영하(studio l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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