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말한 '원형 감옥', 즉 파놉티콘(panopticon)과 닮았다. '모두(pan)+본다(optic)'는 뜻의 파놉티콘은 원래 18세기 영국 철학자 벤덤이 제안한 것으로, 손쉽게 죄수를 감시하도록 고안된 감옥이다. 간수의 방은 어둡게 하고 이를 빙 둘러서 조명이 환한 죄수의 방을 두는 식이다. 죄수는 보이지 않는 시선 때문에 일탈을 못할 뿐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 자발적으로 통제하고 상호 감시까지 한다. 이처럼 사람은 대상의 실체가 보이지 않을 때 불안과 공포가 증폭된다.
영화 '화씨 9/11'에는 요즘 미국인들이 얼마나 공포에 휩싸여 있는지를 알려주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한적한 시골 사람들조차 "아무나 보면 저 사람 혹시 테러범이 아닐까 의심해요. 친구도 못 믿겠어요"라고 한다. "이런 작은 마을을 뭣 하러 테러하겠느냐"고 하자 대답이 걸작이다. "월마트가 아닐까요? 아니면 저기 스파게티 집이거나."
이같이 내부에 웅크리고 있던 공포가 한번 표출되면 광포함이 극에 달한다. 미국을 여행하던 37세의 중국 여성이 경찰에게 처참하게 맞아 중국 대륙이 발칵 뒤집혔다. 우연히 마리화나 사범을 체포하는 광경을 목격했다가 수갑이 채워지고, 온몸에 피멍이 들 만큼 가혹한 대접을 받았단다. LA 폭동으로 이어진 1991년의 로드니 킹 사건에서 보듯 힘없는 유색 인종에 대한 미 경찰의 처사는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9.11 이후 더욱 광적이고, 극악해진 것 같다.
니체는 '세계의 악행 중 4분의 3은 공포에서 나온다'고 했다. 미국은 지금 '얼굴 없는' 테러범들이 뿌린 공포라는 균으로 부식(腐蝕)하고 있다.
이영기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