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길잡이]어린왕자…핵심주제는 인간내면의 고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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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현재의 고교교육 상황에서 고전을 제대로 정독하고 감상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따라 대학측은 해당 고전을 읽지 않았더라도 제시문만 정독하면 이해할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한다.

그러다 보니 수험생들이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문학작품을 출제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도 논제의 제시문은 최소한 '지적 반성' 을 요구한다.

논술평가의 핵심은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를 하느냐 여부에 있다.

좋은 문장을 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는 합리적인 사고의 다음 문제다.

그럼에도 아직 많은 수험생이 논술을 '좋은 문장' 을 쓰는 정도로 오해한다. 논제가 문학작품에서 출제됐다고 해서 문학적인 글을 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기술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론적 저작의 경우와 같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한번 읽어보았을 문학작품 중 깊이 있는 지적반성을 요구하는 작품으로 '어린왕자' 를 꼽을 수 있다. 이 고전의 핵심 주제는 '고독' 이다.

어린왕자는 우주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인간형을 만난다. 오만한 사람, 허영꾼, 높은 지위에 만족을 얻는 사람, 무질서하고 의욕없는 주정꾼, 돈만을 생의 목적으로 삼는 사람, 먹고살기 위해 기계적 노동을 반복하는 가스등 점화부 등을 만나면서 인생의 무의미함을 벗어날 수 없음을 본다.

어린왕자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별이 지구다. 여기에서 어린왕자는 여우와 장미 사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희생' 이 고독과 절망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닫는다.

오랜시간 '길들여짐' 을 통해 서로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비행기 조종사가 사막에 불시착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에서 어린 왕자는 어른의 내면에 있는 '순수한 자아' 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순수한 자아는 그것이 어른의 세계와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절망감과 함께 어린왕자는 죽음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맞게 된다. 이 작품은 97년 서울대에서 출제됐다.

어린왕자.장미.여우가 만나는 장면을 주고 여우와 장미의 개인적 차원의 '길들여짐' 과 '희생' 을 통해 현대사회의 고독인 익명성을 넘어서는 것이 어떤 의의와 한계가 있는지 논술하라는 문제였다.

문학작품에서 뽑은 제시문인데도 논제를 정교하게 제시함으로써 매우 훌륭한 논술문제가 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어린왕자의 좌절감과 죽음을 소재로, 어른 세계와의 대립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순수자아의 좌절이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를 물을 수 있다.

또 여러 별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인간형을 제시하고 이들이 고독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을 비판하도록 요구하는 문제가 출제될 수도 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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