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측, 쟁점 됐던 ‘관세환급제’ 허용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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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막판까지 한·EU FTA의 발목을 잡았던 것은 ‘관세 환급(Duty Drawback)’과 ‘원산지 기준(Rules of Origins)’이었다. 4월 영국 런던에서 양측 통상장관이 만나 최종 타결을 시도했을 때도 결국 이 두 쟁점을 넘지 못했다. 거의 모든 사안에서 접점을 찾았지만 “모든 것이 합의되기 전까진 어떤 것도 합의되지 않은 것”(이혜민 FTA 교섭대표)이란 협상의 속성 탓에 답보 상태에 빠졌다.

관세 환급은 기업이 원자재를 들여와 이를 가공해 만든 완제품을 수출할 경우 처음 원자재에 물렸던 관세를 기업에 되돌려 주는 제도다. 예컨대 국내 봉제업체가 중국에서 들여온 원단으로 옷을 만들어 영국에 팔 경우 원단 수입 때 한국 정부가 거뒀던 관세를 업체에 돌려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내 봉제업체의 옷값을 낮춤으로써 수출 경쟁력을 높여 주겠다는 취지다. 한국에선 1974년 ‘수출용 원재료에 대한 관세 등 환급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반면 EU에선 이를 인정하지 않아 협상 초기부터 쟁점이 됐다. 멕시코·칠레 등 기존에 체결한 FTA에서도 이를 허용한 적이 없다는 게 EU 측의 주장이었다.

결국 양측은 한국의 현행 관세 환급 제도를 인정하되 보완책을 두는 식으로 절충했다. 5년 후 품목별로 다시 점검했을 때 일부 제품에서 지나치게 외국산 원자재 사용 비중이 높아지는 ‘중대한 변화’가 발견된다면 한국 정부가 업체에 돌려줄 수 있는 관세에 제한을 두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쟁점인 원산지 기준은 역외산(EU 회원국 이외의 국가) 원자재를 얼마까지 사용했을 때 이를 국내산으로 볼 것이냐는 것이다. 그동안 협상을 통해 품목별로 비율을 정해 왔으나 마지막까지 남은 게 자동차 기준이었다. 한국은 역외산 부품을 50%까지 쓴 자동차를 ‘메이드 인 코리아’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EU는 40%를 줄곧 고수했다. 한국은 중국 등에서 수입하는 부품이 많은 반면 EU는 대부분 유럽 내에서 부품 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양측은 이를 절충한 45%에서 합의를 이뤘다.

EU가 이처럼 두 쟁점에 대해 민감했던 것은 결국 중국을 의식해서다. 두 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중국산 저가 제품이 무늬만 한국산으로 둔갑해 EU 역내에 들어올 것을 우려한 것이다. 특히 관세 환급 제도를 유지해 오다 최근 EU에 가입하면서 이를 포기한 동유럽 국가들의 반발이 거셌다. AFP통신은 한 외교소식통의 말을 빌려 “이탈리아를 비롯해 폴란드·루마니아·헝가리 등이 (협상 결과를)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보도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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