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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연구’ 에디슨, 이제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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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발명왕 에디슨은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백열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1만3000번에 이르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 100년 전에는 이처럼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에디슨식 발명이 많았다. 미국의 발명가 리 드포리스트도 이런 방식으로 1907년 증폭작용을 하는 삼극진공관을 발명해 전자공학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정작 에디슨과 드포리스트는 자신들의 발명품이 작동하는 과학적 원리를 완전히 알지는 못했다.

오늘날에도 제2, 제3의 에디슨을 꿈꾸며 많은 사람이 발명에 매달리고 있다. 소위 ‘생활발명’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가정주부가 물걸레질이 되는 진공청소기를 발명해 중견기업을 일구어 낸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의미에서 더 이상 에디슨은 없다. 에디슨 시대와 달리 지금은 조직적 과학연구가 아니라 개인 발명가에 의한 큰 혁신은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에디슨식 개인 발명에 의한 특허의 수는 아직 많지만 실제로 상용화되어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대로 20세기의 주요한 발명 목록은 기업이나 연구소·대학 등에서 이루어진 공동연구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컴퓨터, 유전자 치료법, 인공위성, 휴대전화, 마우스 등 우리 주위에 보이는 대부분의 것이 그렇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에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기초과학’ 연구가 더욱 절실해졌다. 세상을 바꾼 큰 혁신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식 자체를 추구하다가 나온 것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무런 상업적 목적도 없이 시작된 DNA 구조의 해명은 오늘날 온갖 종류의 생명공학 연구를 이끌었다. 트랜지스터와 반도체·레이저의 발명은 전자의 움직임과 빛의 성질에 대한 정확한 물리학적 이해 때문에 가능했다.

선진국들은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미래의 경제·문화적 선진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최고 과학지식과 원천기술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이 주목을 끈다. 특히 2015년까지 세계 수준의 ‘기초과학연구원’ 건설에 최고 3조5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은 우리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투자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19명이나 배출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어깨를 견줄 연구기관이 우리나라에 존재한다고 상상해 보라. 기초과학연구원의 성공을 위해 정부와 국민에게 당부하고 싶다. 과학자에게 지원과 성원을 보내되 당장 상업적 성과물을 내라고 재촉하지는 말자.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어 대지 말고 이 연구소를 세계 최고의 지적 놀이터가 되도록 만들자. 그러면 자연도 우리 과학자들에게 비밀의 문으로 통하는 열쇠를 건네줄 것이다.

오동훈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