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갤러리 사바나·상 '물의 풍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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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무더운 여름날, 전시장은 은행 못지 않은 시원함을 줄 수 있다.

그 곳에도 에어컨이 서늘하게 돌아간다.

그러나, 누구도 더위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전시장을 찾지 않는다.

전시장이란 그림을 보겠다는 의사 아래 찾아간 사람들에게만 개방되어 있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지만 그같은 의지, 목적이 없이는 결코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 개방성과 폐쇄성이 함께 들러붙어 있는 것이 바로 전시장이다.

그런데, 지금 인사동에 위치한 두 곳의 전시장 (갤러리 사비나, 갤러리 상) 은 그림감상 뿐만 아니라 피서를 겸한 공간이 되었다.

물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업들이 모인 '물의 풍경전' 이 열리고 있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청량한 물줄기와 시원한 물소리를 접한다.

이 전시는 청소년을 위한 여름 특별기획전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예술적 표현대상으로서 다양한 물의 모습을 살펴 일상에 숨겨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한편 청소년들의 과학적 사고의 증진 및 물의 소중함을 심어줌으로써 미래를 위한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재인식 시킨다" 는 만만찮은 의도를 지니고 있다.

최근 들어 환경 위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생태학적 상상력' 혹은 '녹색 감수성' 을 미술을 통해 심어주려는 시의성을 지니고 있다.

아울러 이 무더위에 걸맞는 전시가 된 셈이다.

전시 관람객을 청소년층으로 굳이 국한시킨 것은 아니지만 그네들에게 보이겠다는 의지 아래 기획된 전시니만큼 교육적 측면에 방점이 놓여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차라리 물과 관련된 과학적, 환경적 정보를 사진과 일러스트를 묶어놓는 전시가 보다 효과적일 텐데. 그 교육적 의도를 이른바 순수미술의 제반 경향들을 망라해 전개시키려다 보니 사실 그 접점을 찾기 애매한 선에서 산만해진 느낌이다.

이번 전시에 참가한 작가들의 '물' 에 대한 생각이 워낙 다르고 그 표현방법 역시 다채롭다 보니까 의도된 배열 (시간적 추이에 따른 물의 변화) 아래 명료한 인식이 추려지는 선으로 보여지기에는 무리가 있어보기기도 하다.

따라서 물이 간 작업들을 맘껏 한 번 모아본 전시로 절충된 편이다.

물이란 소재가 다양하게 표현되고 또 그 해석의 다양성이 그림 보는 즐거움을 주는 한편 재미난 여름용 기획전시가 되었지만 이런 식의 나열로 진 전시란 미술행위의 예리한 각이나 층차를 더소 무디게 만들 수 있다.

단순히 공통된 소재, 외형적 유사성 만으로 담아냈다면 실상 그 속에 깔린 그 무수한 차이와 이질성, 그 현격한 그림의 질적 차이 등을 지나치게 간과하게 만드는 힘이 너무 커보이는 전시가 될 위험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일단 이런 식의 기획전시와 일련의 시의성, 행사성, 아이디어는 지루하고 정체된 화단, 우리 삶에 청량한 피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8월 30일까지. 02 - 730 - 0030.

박영택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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