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정부, 담배·주류세 인상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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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정부가 담배소비세와 주세 인상에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정부 용역을 받은 조세연구원은 8일 정책토론회에서 담배·술에 붙는 세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세연구원이 담배소비세 인상 방안으로 제시한 것은 담배소비세를 물가 상승을 감안해 조정하거나 국민건강증진 부담금을 인상하는 방안, 또는 국세인 담배소비세를 신설(현행 담배소비세는 지방세)하는 방안 등이다. 주세의 경우 현재 72%(소주·위스키 등의 증류주)인 주세율을 최소한 100% 이상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표면적으로 국민건강 증진을 내세우고 있다. 담배와 술은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대표적인 외부불경제 품목인 만큼 소비 억제를 위해 세금을 무겁게 매겨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07년 기준으로 흡연으로 인한 질병·간접흡연 등 사회경제적 비용은 5조6396억원, 음주로 인한 질병·음주사고 등 사회경제적 비용은 18조6056억원이다. 16세 이상 인구의 담배와 주류(증류주) 소비는 각각 세계 7위, 3위권으로 추정된다. 이런 과소비는 담배와 술값이 저렴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담배 값은 미국·일본·유럽연합(EU)은 물론 동유럽권보다 싸다. 이는 담배와 술에 붙는 세금이 다른 나라보다 적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다.

문제는 담배와 소주가 대표적인 서민 품목이라는 점이다. 저소득층일수록 소득에서 담배와 술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이 때문에 담배소비세와 주세 인상은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서민 증세’ 논란을 부를 소지가 다분하다. 사실 담배소비세와 주세 인상은 매년 세제개편 때마다 거론되는 단골 메뉴다. 지난해도 검토되다가 막판에 빠졌다. 서민들의 반발을 우려해서였다.

이런 민감성을 잘 알면서도 정부가 이 문제를 다시 꺼낸 것은 새로운 세원을 찾아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경기 악화로 세금이 잘 걷히지 않는 데다 지난해부터 대대적인 감세를 추진 중이어서 새로운 세원을 발굴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관건은 정부가 ‘서민 증세’라는 부담을 감수하고 내년에 당장 담배소비세와 주세를 인상할 것인가다. 윤영선 재정부 세제실장은 “아직 정부 방침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다양한 의견을 들어본 뒤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도 내심으론 크게 망설이고 있다.

다른 고위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세수를 더 거둬야 하지만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서민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담배소비세와 주세 인상은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서민 증세’라는 부담을 안을지 여부는 ‘정무적 판단’과 당과의 협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상렬·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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