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처럼 이 교실 저 교실, 수준따라 골라 들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① 전 과목 교과교실제를 운영하고 있는 동원중학교는 학생들이 시간표에 따라 해당 교실을 찾아다니며 수업을 듣는다. ② 교사가 교실에 상주하기 때문에 언제든 학습 지도를 받을 수 있다. ③ 점심시간이면 학생들이 식당 앞에 줄을 선다. [최명헌 기자]

상·중·하 반별로 이동 수업 영어 상(上)반 수업이 있는 301호 교실에는 이미 학생들이 모두 앉아 있다. 일찌감치 와서 자리를 잡고 숙제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교실 벽에는 영어 만화와 학생 과제물 등이 붙어 있다. 수업 시작 종이 울리자마자 교사가 바로 교과서를 펼쳐들고 모니터에 미리 띄워놓은 학습 자료를 가리킨다. 교과교실제를 시작하면서 학교는 교실마다 PDP 모니터를 설치했다.

같은 시각 바로 옆 302호 교실에서는 중(中)반 수업이 동시에 시작됐다. 이동수업을 하면서 수준별 수업을 하기도 수월해졌다. 영어·수학 시간에는 2개 반이 상·중·하 3개 반으로 나뉘어 수업을 듣는다. 6반인 신재은양은 “함께 수준별 수업을 듣는 5반 친구들과도 친해지게 됐다”고 말했다. 영어 하(下)반 수업이 이뤄지는 곳은 212호 영어학습실. 일반 교실보다 작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이곳에선 8명의 학생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종이 울리자 학생들은 교과서와 필통을 챙겨 다시 교실을 나섰다. 서로 다른 반에서 수업을 들은 여학생 두 명이 복도에서 만나 함께 다음 수업 교실로 발길을 돌렸다.

생활지도 위해 CCTV 설치 복도에서 만난 2학년 장세진·박현진양은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서로 다른 반이지만 복도에서 오며 가며 자주 만나게 돼 친하다고 했다. 박양은 “사물함 위치가 제각각 떨어져 있어 친구와 함께 이동하기가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이 학교의 복도에는 일반 학교들보다 큼직한 사물함이 꽉 들어차 있다. ‘내 자리’가 없고 매 교시 이동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기존의 사물함이 턱없이 작았기 때문이다. 학교는 올 5월에야 기존 것보다 약 3배 정도 큰 사물함으로 교체했다. 송석원 교장은 “복도가 좁고 교실 크기가 획일적인 옛 학교 건물을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려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며 “시설을 새로 꾸미기 위한 예산 지원이나 사용연한이 만료되지 않은 시설을 임의로 교체할 수 없다는 제도적 한계 등도 걸림돌이었다”고 털어놨다.

학교는 생활지도 강화를 위해 학교 곳곳에 CCTV도 설치했다. 학생들이 이동하는 동안 사고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는 학부모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유강우 교사는 그러나 “교실마다 교사가 상주하게 되면서 학생들이 생활하는 곳에서 최소 10m 이내에는 교사가 존재하게 됐다”며 “사실상 예전보다 생활지도가 용이해졌다”고 말했다.

과목별·교사별 특성 살린 수업 교과교실제를 시행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교사들의 수업 준비다. 처음에는 반대하는 교사도 일부 있었지만 지금은 만족도가 90%에 달한다. 교사들이 ‘내 교실’을 갖게 되면서 과목별·교사별 특성이 드러나는 공간으로 꾸미게 됐고 기자재 파손도 줄어들었다. 학교는 교사들에게 학습자료 및 연구결과물을 교실에 모아두도록 장려하고 있다. 준비가 충실해지다 보니 수업시간을 꽉 채워 강의할 수도 있게 됐다. 김윤경 교사는 “수업시간 끝까지 학생들을 붙잡아 둘 수 있어 수업 장악력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이런 변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는 분위기다. 2학년 때부터 교과교실제를 겪은 3학년 이세희양은 “선생님이 항상 계시다 보니 교실에서의 사고가 줄었고 수업도 좀 더 알차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동수업의 특성상 예전처럼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자는 학생도 사라졌다는 귀띔이다. 송 교장은 “아이들이 시간표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계획적·능동적으로 생활하게 된다”고 말했다.

휴게실·학습 공간 부족해 불편 하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학교 자체 설문조사 결과에서 학생·학부모의 만족도가 아직은 낮은 것도 이 때문.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대부분 하루 종일 가방을 메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방승훈(1학년)군은 “매 교시 사물함까지 가기가 귀찮기 때문에 그날 배울 것을 가방에 모두 넣어가지고 다닌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1학년의 경우 처음에는 체력적으로 힘들어 한다”고 말했다.

휴게실과 학습 공간이 충분하지 못한 것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휴식을 위해 1층에 휴게실을 마련하고 보드 게임을 빌려주는 등 나름의 배려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교생이 공동으로 이용하기엔 아직 턱없이 작다. 점심시간에는 교사들이 교실 문을 잠그고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공부할 장소도 마땅치 않다. 보드 게임을 즐기는 학생들 옆에서 서로 문제 풀이를 알려주던 조재원·서동범(3학년)군은 “1~2학년과 같이 공간을 쓰다 보니 아무래도 시끄럽다”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사물함을 책상 삼아 숙제를 하던 이희라(1학년)양은 “주로 다음 시간 수업할 교실에서 쉬거나 숙제를 하는데 점심시간에는 그냥 돌아다니거나 사물함 앞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오동범 교사는 “학습적인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서도 “생활 터전으로서의 학교의 기능은 약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서구 스타일의 시스템에 따라 생활도 개인주의화된다는 것. 학교 측은 이에 대해 “소속감 강화를 위한 학급 단위 행사를 늘리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최은혜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교과교실제 도입 계획

교과부는 시행 초기인 점을 고려해 실시 유형을 ‘전면도입형’과 ‘부분도입형’으로 나눠 대상 학교를 선정하기로 했다. 교과교실제로의 전환을 희망하는 학교의 신청을 받아 시·도 교육청의 심사를 거쳐 7월 초까지 지원 대상 학교를 최종 선정할 예정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