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관계 ‘리셋’… 화해 새 장 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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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가운데 왼쪽)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가운데 오른쪽)이 6일(현지시간) 러시아 크렘린궁에서 환담하고 있다. [모스크바 AFP=연합뉴스]


러 인테르팍스 통신과 AP 통신 등에 따르면 올해 말로 만료되는 기존 핵 군축 협정인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을 대체할 새 협정 초안에 양국이 원칙적 합의를 이뤘다. 핵탄두 운반수단 감축 수준 등을 두고 막판까지 줄다리기 협상을 벌이던 양국 실무진은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 전날인 5일 밤 전격적으로 이견을 좁히는 데 성공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날 모스크바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새 핵 군축 협정의 핵심 내용을 담은 공동 성명에 서명했다. 현지 유력 일간 코메르산트는 “아직 협정 자체는 아니고 협정 문건 작업을 위한 초안을 담은 문서에 서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지 언론들은 그러나 “이 정도의 합의도 미국의 부시 전 정권 시절엔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새로운 핵 군축 합의가 이번 회담의 최대 성과라고 평가했다.

1991년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서명한 START-1은 양국이 보유한 전략 핵탄두 수를 6000개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전략 폭격기 등 핵탄두 운반수단도 1600기 이하로 감축하기로 했다. 이번 협상에선 전략 핵탄두 수를 1500~1675개, 장거리 미사일을 500~1100기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미 국무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미국과 러시아는 각각 2200개와 2800개의 전략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오바마와 메드베데프는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START-1을 대체할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새로운 핵 군축 협정 체결을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계획 철회와 연계시킨 것이 걸림돌이 됐다. 러시아는 미국이 이란 등 ‘불량국가’의 공격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폴란드와 체코에 MD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계획에 강력히 반발해 왔다. 이번 회담에서 러시아가 동유럽 MD 문제에서 어떤 양보를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화해의 회담=오바마 대통령은 6일 오후 1시20분(현지시간·한국시간 오후 6시20분) 모스크바에 도착해 3일간의 방러 일정에 들어갔다. 부인 미셸 오바마, 두 딸과 함께 모스크바를 찾은 오바마는 첫날 곧바로 메드베데프와 단독 실무회담을 하고 핵 군축 협정, 미국의 동유럽 MD 계획, 이란과 북한 핵문제, 아프가니스탄 대테러전, 중동 평화 협상, 양국 통상 현안 등에 대해 깊이 논의했다. 양국 정상은 핵 군축 합의 외에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대테러전을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가 아프간으로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는 미군 수송기에 자국 영공을 개방하는 데도 합의했다.

오바마는 방문 둘째 날엔 지난해 5월 퇴임 이후 여전히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실세 총리 푸틴과 조찬회동을 한다. 이어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의 면담, 러시아 기업인 연합과 미 상공회의소가 주관하는 비즈니스 포럼 참석 등의 일정을 소화한다. 방문 사흘째인 8일 오전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이 열리는 이탈리아로 향한다.

유철종·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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