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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짓고, 사람을 흐르게 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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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호 02면

스페인 발바오

‘현재는 과거를 밀어내지 않고, 과거는 현재를 미워하지 않는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네르비온 강가를 걸어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향하면서 든 생각이다.

칸타브리아 해변에 면한 스페인 북부의 빌바오. 철강ㆍ조선 산업으로 융성하던 이 도시는 1970년대 들어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는다. 그러자 이곳 사람들은 “더 이상 공업은 없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문화를 통한 도시 개조에 나섰다. 지금은 한 해 수백만 명이 찾는 관광도시로 변모했다.

사람들은 빌바오의 재생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찾는다. 독특한 외양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한 해 100만 명 이상을 끌어 모으는 빌바오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구겐하임 미술관만으로 도시 개조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빌바오 시민들은 어떻게 도시를 바꿀 것인가에 대해 머리를 맞댔고, 마음을 합쳤고, 지혜를 모았다. 그 결과 이들은 현재와 과거를 절묘하게 믹스시켰다. 예전에 자신들을 먹여 살렸던 석탄 한 무더기를 공원 한쪽에 쌓아놓았고, 배를 만들던 공장을 활용해 박물관과 공연장을 지었다. 빌바오에 온 사람들은 무엇보다 과거와 현재가 사이 좋게 공존하는 모습에서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 우리는 이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들이 문화로 도시를 바꾼 비결을 네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2 전통적인 양식의 건물 옆에 현대적 양식의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3 아파트 벽에 칠해진 그림 4 주택가 도로 바닥에 그려진 그림

1 길을 바꿨다
빌바오는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그 한가운데를 네르비온강이 가로질러 바다로 빠져나간다. 교통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 왕래에 불편이 많았다. 빌바오 당국은 길을 바꾸고 새로 만드는 데서부터 도시 개조를 시작했다.

95년에 지하철 1호선을 개통했고, 현재는 4호선을 계획 중이다.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지하철 역 출입구는 사람 식도를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끈다.

항만시설도 정비해서 물류 항구와 관광 레저 항구로 구분했다. 항구에서 도심으로 연결하는 도로도 시원하게 뚫었다. 그러자 페리를 타고 영국에서 건너오는 관광객이 크게 늘었고 호화 유람선으로 입항한 인원도 연 4만 명을 넘는다. 2000년에는 1억9000만 유로를 들여 신공항을 건설했다.

도시의 길들도 싹 바꿨다.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철길을 외곽으로 돌렸다. 철길이 없어짐으로써 도심으로 들어오기가 수월해졌다. 철길로 나눠졌던 지역들도 합쳐지면서 철길 인근의 슬럼가도 없어졌다. 네르비온 강변도로도 정비했다. 차도를 줄이고 인도와 자전거길을 만들어 사람이 다니기 편리하게 만들었다.

네르비온강에 다리도 3개를 더 놓았는데 그중 2개는 사람만 다니도록 했다. 유소년 축구교실을 운영하며 한국인 유망주를 키우는 마누엘 콜메네로(54)는 “빌바오 사람들의 80%는 걸어서 다닌다. 도시란 걸으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2 환경을 바꿨다
네르비온 강변에는 철강공장과 조선소가 몰려 있었다. 쉴 새 없이 쏟아내는 공장 폐수로 네르비온강은 심하게 오염돼 있었다. 공장들이 문을 닫거나 외곽으로 옮겨가면서 네르비온강은 점차 수질을 회복했다. 시 당국도 강물 정화를 위해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들였다. 오염된 강물을 무려 300㎞나 끌어와 정화시킨 뒤 다시 내보내는 작업도 했다. 지금은 모든 시민이 네르비온 강물에서 끌어온 수돗물을 마신다. 바에 가도 수돗물을 틀어준다. 강에 물고기가 돌아오고 새들도 찾아왔다. 내년 2월부터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낚시 수업을 연다고 한다.

시 당국은 시민들에게 환경 보호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시내 중심에 바스크주립대 캠퍼스를 열어 시민들이 기초적인 친환경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강좌를 개설했다. 빌바오 시내에는 ‘트란비아’라는 두 량짜리 경전철이 다니는데 그 철로 좌우로 잔디가 심어져 있다. 왜 그렇게 했느냐고 시청 직원에게 물었더니 “환경을 고려했고, 전철이 다니지 않을 때는 잔디밭으로 착각하도록 만들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올해는 ‘빌바오 가든’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빌바오 시내 27군데에 10평 남짓한 소규모 공원을 꾸미고 거기에 유실수를 심었다. 주민들이 오가며 식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과 환경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3 구겐하임을 모셨다
도로와 환경 정비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기로 결정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1937년 솔로몬 구겐하임이 미국 뉴욕에 설립한 이후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독일 베를린 등에 분관을 설치했다. 빌바오 시 당국은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게 설계를 맡겼고, 건축비로 1억2000만 유로를 들였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엄청난 돈을 들여서 미술관을 지을 필요가 있느냐”는 항의가 빗발쳤지만 시 당국은 꿈쩍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게리는 “금세기 최고의 건축물”(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이라는 찬사를 받는 걸작을 만들었다. 비행기 외장재인 티타늄 3만3000장을 이어 붙인 외벽은 흐린 날은 은빛, 태양을 받으면 금빛으로 반짝인다.

97년 10월 개관한 구겐하임 빌바오는 3년 만에 투자비를 회수했고, 6000명의 직·간접적인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지금도 이 미술관을 보기 위해 이웃 프랑스와 영국 등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방문한 날 미술관 2층은 중국 작가, 3층은 일본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중국ㆍ일본 관람객이 많았지만 작품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구겐하임 빌바오는 컬렉션이나 전시된 작품의 명성보다는 미술관 건물 자체의 매력으로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4 역사는 남겼다
새것을 만들려면 무조건 옛것을 부수고 봐야 한다는 생각은 낡고 병든 것이다. 빌바오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모색했다. 구리 만들던 공장을 리모델링해 콘서트홀로 쓰고 있고, 조선소를 통째로 박물관으로 바꾸기도 했다.

시내의 음악당 한쪽에는 시커먼 석탄이 한 무더기 쌓여 있다. 과거 빌바오가 공업도시로 융성했으며, 부모 세대를 먹여 살린 것이 바로 이 석탄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는 의도다. 공장 굴뚝을 그대로 살려 지은 공연장도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 바로 곁으로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고가도로가 지나간다. 웬만하면 고가도로를 부수거나 도로를 조금 비켜서서 미술관을 지었을 텐데 빌바오는 그러지 않았다. 그 덕에 미술관 일대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상징성을 갖게 됐고, 도로에 올라서면 구겐하임 미술관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보너스도 얻었다.

구겐하임 미술관 앞에는 4000송이의 꽃으로 만든 강아지 모양의 조형물 ‘푸피’가 있다. 미국의 미술가 제프 쿤스가 만든 이 작품은 당초 개관 행사가 끝나면 철거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빌바오 시민들이 “개관 행사 끝났다고 철거할 필요가 있느냐”며 보존 요청을 했다.

지금 푸피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상징이 됐고, 빌바오 시민들은 이제 미술관을 ‘개집’이라고 부른다.

빌바오(스페인) 글=정영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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