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미국 월마트가 팝콘 가짓수 줄인 이유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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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불황으로 경영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소비자행동학(Consumer Behavior) 면에서 호황 때 예상치 못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에 맞춰 기존 마케팅 전략을 180도 선회하는 기업들도 속속 등장한다. 그동안 적용해온 이론으론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다. 특히 실업률 10%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각종 ‘불황 마케팅’ 아이디어가 넘친다.

◆아픈 곳도 건드린다=마케팅에서 소비자의 약점을 건드리는 것은 금기다. 그럼에도 요즘 미국 시장에선 ‘실직 마케팅’이 한창이다. 직장을 잃은 사람에게 대놓고 할인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최근 대형마트 체인인 K마트가 실직자에게 자체상표(PL) 제품을 20% 싼 가격에 파는 행사를 시작했다고 2일 보도했다. 자동차 업체의 감원 여파가 큰 미시간주부터 시작해 전국으로 넓힐 계획이다.

남성복 업체 ‘조스 에이 뱅크스’는 199달러짜리 양복을 산 고객이 실직할 경우 일부 금액을 환불해 주고 있다. 구매 고객이 실직할 경우 차량을 되사주기로 한 현대차의 보장 프로그램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소비자의 체면 때문에 시도하기 힘든 마케팅 수단이지만 불황이 지속되고 사람들이 가격에 예민해지면서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집안 식탁 공략=주류업체 입장에선 술집·식당 등 외식업체가 우선 순위 고객이다. 그러나 불황으로 장사가 잘 안되자 집에서 마시는 술을 파는 데 주력하고 있다. 양주업체 디아지오는 최근 750종의 칵테일 제조법을 담은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칵테일용 제품도 따로 내놨다. 집에서 주로 맥주만 마시는 애주가들의 입맛을 바꾸기 위해서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성표 수석연구원은 “전 세계적으로 ‘집안 소비’가 증가한 게 소비자들의 가장 큰 변화”라며 “기업 입장에선 가정이 중요한 시장으로 부각됐다”고 분석했다.

◆‘다다익선’은 옛말=얼마 전 대형마트 월그린은 진열돼 있던 순간접착제 브랜드 25종 가운데 14종을 뺐다. “종류가 많다고 매출이 오르는 게 아니다”는 판단에서다. 월마트도 팝콘 제품의 가짓수를 25%, 크로거는 시리얼 브랜드 종류를 30% 줄였다. 불황일수록 신뢰하는 브랜드에만 소비자의 손이 가기 때문에 여러 제품을 갖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업체 입장에선 재고 관리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월그린의 캐서린 린더 부사장은 “1990년대만 해도 더 많은 종류의 상품을 갖추기 위해 경쟁했지만 지금 같은 때는 상품 종류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소비를 위축시킨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제조업체들은 대표 브랜드 판매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다양한 브랜드로 차별화를 하려던 것에서 한정된 자원을 선택·집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말했다.

◆커지는 ‘공짜 경제’=FT는 2일 앞으로 주목해야 할 시장 트렌드로 ‘공짜 경제’를 소개했다. 업체 간 가격 경쟁, 산업의 디지털화 등으로 이젠 가격이 ‘0원’까지 내려가지 않으면 소비자의 주목을 끌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는 ‘롱테일 경제학’으로 유명한 IT전문가 크리스 앤더슨이 주장한 내용이다. 디지털 시대엔 잘 팔리는 고가의 몇 개 제품보다는 자잘한 여러 개의 ‘틈새 제품’ 매출 비중이 더 커진다는 게 롱테일 경제학이다.

그는 한 술 더 떠 ‘공짜 제품’들이 기업 성장을 이끄는 동력이 될 거라고 봤다. 소프트웨어를 공짜로 깔아 준 뒤 관리·컨설팅을 통해 수익을 얻고, 무료 전화단말기를 준 뒤 비싼 값에 콘텐트를 이용토록 하는 식이다. 그는 이런 ‘공짜 경제’의 규모가 현재 3000억 달러에 이른다고 봤다.

FT는 이제 고급 제품을 앞세우는 프리미엄(Premium) 시대를 지나 공짜 제품을 미끼로 돈을 버는 프리미엄(Freemium) 시대를 맞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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