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400여명 집단 입국하면] 하나원 수용능력 400명 뿐…확충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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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동남아의 모 지역에 집결해 있는 400여명의 탈북자를 해당 정부와 끈질긴 교섭 끝에 일괄 귀국시키기로 했다. 탈북자 정책의 대변환을 예고한다. 사진은 지난 2월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 쪽으로 넘어오는 탈북자들을 북.중 접경지인 투먼에서 찍은 것이다. [권철 사진작가]

정부가 동남아 국가에 체류 중인 탈북자 400여명의 일괄 입국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그 파장은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해당 국가와 중국.북한 등이 불만을 나타낼 수도 있다. 외교적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탈북자들의 신변 안전도 발등의 불이다. 비밀 수송 계획이 사전에 공개됨에 따라 탈북자들이 해를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정부 입장은 국내외적으로 아주 어렵게 된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의 탈북자 정책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일괄 한국행 추진 배경=그동안 탈북자 문제는 한국과 중국 정부 간의 문제였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탈북자들이 대거 국경을 넘어 동남아 국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마땅한 거주지도 없이 현지에 나가 있는 국내 탈북자 지원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탈주민 입국 현황 탈북자 주요 탈출 경로 이미지 크게 보기>

탈북자 수가 급격히 늘면서 해당 국가도 골머리를 앓게 됐다. 올 초엔 이들 국가가 비공식 외교 경로를 통해 "탈북자 문제에 적극 협조하지 않을 경우 모두 중국으로 돌려 보낼 것"이라며 정부의 적극 대응을 촉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부는 관계 부처 논의를 거듭한 끝에 이들을 전원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지난 5월 말 협상을 시작했다.

◇정책 변화의 신호탄인가=관심은 정부의 탈북자 정책이 변했느냐다. 그간 정부는 탈북자 단체들이 아무리 시위를 해도 '조용한 외교'를 내세우며 가급적 공식 대응을 삼갔다. 그런데 이번엔 400명이나 되는 인원을 한꺼번에 데려온다. 그래서 정책의 기조가 바뀌는 것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 당국자는 "제3국으로 탈출한 탈북자의 경우 한국행을 원하면 모두 받아들인다는 방침은 예전부터 세워뒀던 원칙"이라며 "정책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10여명 단위로 입국시키는 게 되레 부담이 더 커서 아예 한꺼번에 데려오기로 한 것일 뿐"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기획 탈북에 적극 나설 것이란 일부의 추측은 근거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탈북자 문제에 대해 정부가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향후 과제=탈북자들이 국내에 무사히 입국한다 해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당장 국내 수용시설이 모자라는 게 문제다. '하나원'의 수용 규모는 400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벌써 포화상태다. 다른 동남아 국가가 그들 나라에 모여 있는 탈북자들까지 데려가라고 할 경우 과연 받아들일 것이냐도 숙제다.

정부로선 중국과 북한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탈북자의 대규모 입국이 계속 시도되거나 이어질 경우 대중.대북 관계에서 이상기류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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