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출산친화적인 사회를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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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지금 우리나라는 경기 한파에 저출산 폭탄까지 맞고 있다. 저출산은 고령화와 맞물려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위기요인이다. 2006년 쌍춘년과 2007년 황금돼지해에 신생아 수가 잠시 증가했으나, 그 이후 출산율은 다시 낮아졌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2%일 경우 출산율이 1.08명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대로 가면 현재 4870만 명에 이르는 우리나라 인구는 2100년 2000만 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둡기 짝이 없다. 세계 미래학자들은 2305년이 되면 한국인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마디로 비상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반영하듯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각종 대책을 강구하느라 여념이 없다. 정부는 최근 3자녀 이상 무주택가구에 국민임대주택을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영·유아 보육 무상지원 대상을 35만 명에서 62만 명으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또 자녀를 낳을 때마다 월급을 올려줘 여섯 명이면 160만원을 주는 기업이 언론에 보도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살림이 빠듯한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겠다고 나섰다. 심지어 출산장려책 대신 아예 미국처럼 이민을 받아들여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출산율은 그 속성상 단기간 내에 변화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출산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정부가 1960년대 초에 가족계획사업을 도입한 지 20년이 지나서야 목표출산율인 2.1명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한번 떨어진 출산율을 회복하려면 그보다 몇 배 더 힘들고 긴 여정을 거쳐야 한다. 참고 기다리며 긴 호흡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래서 정부 예산만 늘린다고 해결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사회 각 부문이 힘을 합쳐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저출산 문제를 풀어줄 일등공신은 ‘출산친화적인 사회제도’라고 본다. 육아의 짐을 여성에게만 떠맡기는 사회적 분위기, 출산여성이 승진과 보직에서 차별받는 직장문화, 사교육비를 포함한 과다한 자녀양육비 부담은 무엇보다 가장 먼저 사라져야 할 요소들이다. 한마디로 사회 전체가 출산친화적이 되지 않으면 쏟아 붓는 보육료 지원만으로 그 효과를 거두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이 점에서 세제·금융·주택·교육·보건·복지·고용·국토개발·교통·문화정책 등 정부의 공공정책이 결혼과 출산에 우호적인지를 검토하는 이른바 ‘출산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출산친화적인 사회제도를 법적으로 강력하게 뒷받침하기 위해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등 관련 법령도 정비해야 한다.

자녀양육 부담을 덜어줄 정부의 재정 지원도 중요한 변수다. 그동안 보육료 지원 예산은 꾸준히 늘어났고, 보육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2008년 우리나라 취학 전 아동의 보육 및 교육 투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0.47%로, 스웨덴 등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아동 보육은 미래에 대한 투자다. 1달러를 투자하면 4달러가 되돌아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아동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려면 상당한 재원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출산장려기금이나 저출산특별세의 제정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오늘의 현실이 여러모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풀어야 할 과제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당장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해서 닥쳐올 위기를 외면한다면 오늘만 살고 내일은 살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고 우리 후손들에게도 정말 무책임한 짓이다. 우리 모두의 각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문창진 차의과학대 보건복지대학원장 전 보건복지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