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길 … 새로운 추억이 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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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꽃잎이 눈발처럼 흩날렸다. 5월의 경춘가도(京春街道)는 굽이굽이 꿈의 길, 꽃잎이 날리는 청춘의 길이었다. 서울과 춘천을 오가며 차창 밖을 따라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바라보던 젊은 날, 내 청춘의 경춘가도는 그렇게 아름다웠다.

이 길에 고속도로가 열린다. 이제 서울~춘천고속도로가 달린다. 서울과 춘천을 잇는 국도의 변화는 또 다른 모습으로 춘천을 은유한다. 전 국토를 벌집처럼 쑤셔놓는 도로망이 얽히는데도 어쩐 일인지 서울~춘천에는 고속도로가 뚫리지 않았다. 길에는 시간과 거리가 씨줄과 날줄로 얽힌다. 한 시간 반의 거리라고 하지만 경춘가도는 교통량이 넘치면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체증의 길’로, 2% 부족한 ‘아쉬움의 길’로 남았다.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심리적 거리는 더 멀었다. 고속도로가 닿지 않는 유일한 도청 소재지로 춘천을 여전히 심리적 변방, 그토록 가까우면서도 그토록 먼 ‘심리적 오지’로 남아 있게 했던 것이다.

이 오랜 벽을 깨며 서울~춘천고속도로가 뚫린다. 소통과 교류의 시대를 여는 길이며 춘천을 수도권의 푸른 허파로 다가서게 하는 길이며, 해발 150미터를 달리는 청정의 길이다. 21개의 터널이 구름다리처럼 이어지는 하늘에 떠 있는 길이며 53개의 다리가 산과 산을 잇는 웅장한 길이다.

경춘가도의 풋사랑이 없는 추억은 사랑이 아니었다. 북한강에서 깊어 가던 MT의 밤과 포플러 우뚝우뚝 늘어선 길을 자전거로 달리던 푸른 가슴이 없는 대한민국의 청춘은 청춘이 아니었다. 그 길에 이제 서울~춘천고속도로가 달린다. 한 시간의 품으로 다가서는 춘천에서 우리는 호수를 즐기고, 소설가 김유정의 향기를 맡으며, ‘겨울연가’의 거리를 걸을 것이다.

역사에는 길을 만드는 왕조가 있었고 성을 쌓는 제국이 있었다. 로마는 길을 뚫었다. 길은 열림이었고 소통이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아포리즘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동양의 진(秦)나라는 성을 쌓았다. 만리장성은 우주선에서도 식별이 되는 지구 위의 가장 장대한 구조물이었다. 그러나 성은 닫힘이었고 갇힘이었다. 한 곳은 열었고 한 곳은 닫았다. 길을 만든 로마와 성을 쌓은 진나라, 어떤 치적이 번영의 은성함 속에서 장구한 세월을 살아남았는지는 역사가 안다. 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진실이다.

중국의 문호 루쉰(魯迅)은 ‘희망이란 땅 위의 길과 같다’고 했다. 땅에는 길이 없었다. 걷는 사람이 많으면 그때 그곳이 길이 되었다. 희망도 길과 같다. 사람이 다니면 길이 되듯이 꿈도 이루어진다고 믿을 때 찬란한 희망이 된다. 이제 개통을 맞는 서울~춘천고속도로가 그 진실을 속삭이고 있다, 길은 희망이라고. 아, 가슴 설레는 길, 이제 꿈의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희망을 달린다.

글=한수산(작가·세종대 국문과 교수)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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