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 구조조정]상.계획 왜 축소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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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건설교통부가 8일 확정한 경부고속철도 수정계획은 한마디로 총사업비를 줄이기 위해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서울~대구까지만 고속철을 새로 건설하고 대구~부산간 기존 경부선철도를 전철화하기에만도 벅차다는게 정부 관계자의 실토다.

이같은 건교부 수정안에 접한 전문가들은 "상식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대안" 이라고 말한다.

대구 이남 노선의 고속철 건설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경주 우회노선 개통을 유보하는 등 상당한 규모로 기본계획에 칼을 댔음에도 '예상된 수준' 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거품빼기' 외에 정부로서도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금융 지원체제에서 다른 묘책이 없기 때문.

노태우 (盧泰愚) 대통령 집권 당시인 90년 6월 노선 및 기본사업계획이 발표된 고속철 사업은 사실상 정치적 인기에 편승한 한건주의와 밀어붙이기식 행정이 어우러져 총체적 부실을 불렀다.

발단은 92년 6월 '선착공 후설계' 라는 웃지 못할 시험구간 착공이었지만 이후에도 정치적 상황에 따라 사업계획은 수시로 뜯어고쳐졌다.

네차례나 지하.지상화를 드나들다 결국 사업이 유보된 대전.대구 도심구간 문제와 노선결정까지만 6년이 걸렸다 역시 착공이 연기된 경주노선 문제가 대표적 사례다.

계획이 엎치락 뒤치락 할 때마다 사업비가 낭비돼 90년 기본계획 당시 5조8천여억원의 사업비는 올 4월 감사원 감사 결과 22조원대를 넘어섰고 10조원이 넘는 재정적자를 감내해야 하는 국민의 정부로서는 대안선택의 입지가 줄었다.

더구나 지난해말부터 시작된 감사원 감사 결과 1백1개 항목의 부실이 드러나 정부는 사업중단 방안을 포함한 대안마련이 절실했다.

감사 결과가 발표된 올 4월 건교부 고위관계자가 "마음 같아선 아예 고속철도사업에서 손을 떼고 싶다" 고 실토할 정도였지만 고속철은 한국형 TGV 제작사인 프랑스의 알스톰을 비롯, 4개국 6개 회사.기관이 참여하는 국제적 사업이어서 사업중단이란 극약처방은 대안에서 제외됐다.

국가 대외신인도 추락 등 여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사업비 등 사업중단에 따른 경제적 손실 규모가 총사업비에 맞먹는 17조8천5백억여원으로 추산되자 정부는 사업비 축소로 가닥을 틀었다.

과다설계된 천안역사 등 역사 건설계획을 축소했지만 사업비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자 결국 지역주민의 반발을 무릅쓰고서라도 대구~부산간 기존노선 전철화와 대전.대구구간 지상화, 경주노선 착공연기라는 고육지책을 선택했다.

또 개통시기를 지난해 2차 수정계획안의 2005년 11월보다 1년7개월 앞당긴 것도 개통후 5년만에 단년흑자를 내겠다는 계산이다.

권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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