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정신적 격조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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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모모세 다다시 (百瀨 格) 씨는 한국생활 29년째인 일본인 상사 (商社) 맨이다.

1971년부터 12년간 포항제철 건설현장에서 일한 공로로 대한민국 산업포장 (褒章) 을 받은 그는 서울 남산의 개나리를 사랑하며, 자신이 백제 유민의 후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되고 싶은 일본인' 이다.

모모세씨는지난해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 라는 긴 제목의 책을 펴냈다. 도발적인 제목과 달리 책 내용은 한국에 대한 우정어린 비판과 충고로 가득하다.

그중 하나가 고객에 대한 서비스정신 결여다.

식당에 가면 종업원은 '어서 오십시오' 하고 손님을 맞지만 주문을 받고 나면 이미 손님이 아니다. 정성 어린 서비스로 다음에 다시 찾아오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빨리 먹고 나가라' 는 식이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은행원들은 손님이 자신의 지갑속에 들어 있는 마지막 한푼까지 끄집어낼 정도로 극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한국의 은행원들은 그렇지 못하다.

고객의 귀중한 돈을 맡았으니 최선을 다해 관리해야 한다는 각오를 찾아볼 수 없다.

모모세씨는 이것이 정신적 격조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난3월말 일본의 4대 증권회사중 하나였던 야마이치 (山一) 증권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 11월 자진폐업을 선언하면서 노자와 쇼헤이 (野澤 正平) 사장은 모든 잘못은 자신을 포함한 경영진에 있다고 자책하면서 직원들의 선처를 호소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직원들은 "비록 회사는 망했지만 내가 젊음을 바쳐 일해 온 회사의 이미지만은 좋게 남기겠다" 면서 고객보호를 위한 최대의 노력으로 고객자산 24조엔 대부분을 돌려줬다. 이를 처리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그러고 나서 회사가 문을 닫자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금융구조조정계획에 따른 정부의 5개 은행 퇴출조치에 대해 해당은행 임직원들은 육탄저지로 맞서고 있다. 전산망을 마비시키고 금고문을 잠그는 등 인수업무를 방해하면서 자신들의 고용보장을 요구한다.

이 와중에 퇴직금 등 제몫은 철저히 챙기면서 정작 고객인 예금주가 겪는 피해, 그리고 휴지조각이 된 주식밖에 남지 않은 주주들에 대한 사죄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나라 금융산업 종사자들의 정신적 격조가 어떤 정도인가를 확인하게 된 것은 매우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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