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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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제4장 서까래를 치면 기둥이 운다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둥근 식탁을 차지하고 둘러앉은 네 사람중에서, 변씨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엉거주춤했지만, 성민주의 태도는 매력적이었다.

땅거미식당의 식단은 여전히 단일 품목인 낚지볶음이었다.

그녀는 안주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조리대를 들락거리면서 재료와 냄비를 가져와 손수 음식조리를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성민주의 신분이 자신들과는 먼 곳에 있다는 위화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변씨는 그녀의 소박한 태도를 안쓰럽게 보기는커녕 오히려 적의를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무슨 핑계라도 생기면 대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버릴 듯 조리대와 술청을 들락거리는 그녀를 노골적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뒤틀어진 변씨의 태도에 철규는 안절부절못했다.

성민주가 바라보고 있는 면전에서 못마땅한 태도를 따져 물어볼 수도 없었다.

변씨의 성품이 엉뚱하고 입도 걸어서 느닷없이 승희와의 관계를 꺼내어 지절거리기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딱 버티고 앉아서 쌍심지를 돋우고 있는 그를 지금 당장은 구슬러볼 재간이 없었다.

조바심하는 가운데 식탁의 냄비에서는 김이 솟아올랐고, 태호가 소주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오직 변씨 한 사람 때문에 좌석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철규가 예상하고 있었던 한마디가 불쑥 변씨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지금까지 식당 귀퉁이에서 멀찌감치 비켜앉아 있던 그가 의자를 식탁으로 썩 당겨 앉으면서 비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봐, 한선생. 우리가 이렇게 고상한 자리에 초대를 받을 줄 알았더라면, 한선생이 고집 피워서 주문진에 두고온 승희를 데리고 왔을 걸 그랬지? 한선생이 아끼는 승희가 좋아하는 요리가 낚지볶음이란 것은 우리보다 한선생이 너무나 잘 알고 있잖여. " 철규가 아무리 강심장이라 하더라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철규뿐만 아니라, 태호까지도 승희가 낚지볶음을 즐겨한다는 말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엉뚱하게 뒤집어씌워 찬물을 끼얹자는 수작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보이는 언사였다.

그때, 태호가 변씨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히쭉 웃음을 흘리는가 하였더니, "승희씨가 낚지볶음 좋아한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한선배가 아니라, 접니다.

한선배는 승희씨하고 이런 음식을 같이 먹어본 적도 없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저구요. 게다가 승희씨는 한선배하고 곧잘 어울리는 사이도 아니잖아요. " 이번에는 변씨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태호의 반격은 예상 밖이었다.

물론 변씨의 언변으로는 태호의 반격을 당장 뒤집어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미묘한 시기였었기 때문에 태호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미련은 남아서 한마디 꾹 찔렀다.

"태호도 둘러대는 언변을 보자하니 심상치 않구만. " 눈치가 빠른 여자라면,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말의 골자가 어디에 있다는 것쯤은 알아챌 만하였다.

그러나 성민주는 느닷없이 대화에 오른 승희라는 여자에 대해서 별다른 호기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가볍게 일어나 조리대로 가서 앞접시를 가져와 세 사람에게 음식을 나눠주었다.

어색한 분위기

에서 간신히 벗어난 철규가 그녀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성민주는 술에는 능숙하지 못하다는 고백을 하면서도 내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지못해 술잔을 받아드는 그녀를 바라보던 변씨가 뇌까렸다. "한선생 기왕 술잔을 권했으면,가득 부어 올리라요. 요사이는 남자 좋아하는 여자들은 소주 두어 병 정도는 일 같잖게 마실 줄 아는 세상이 됐뿌렀어. 원샷이던가 그런 말도 있잖여. " 위압적이라 할 수밖에 없는 변씨의 참견에도 성민주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얼굴만 붉힐 뿐이었다.

자신을 헐뜯는 듯한 말인데도 대꾸도 없이 듣고만 있는 것이 오히려 불안했지만, 지금 당장은 그녀를 치켜세워줄 방안이 없기에 안쓰럽다는 생각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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