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흐르는 한강 '선유도 시낭송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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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돌던 27일 오후 6시 한강 선유도(仙遊島). 아치형 다리인 선유교와 한강 전망대, 울창한 숲으로 유명한 선유도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나들이객들로 북적였다. 토요일 저녁 이곳에서는 특별한 무대가 펼쳐진다. 비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주 시낭송회가 열린다. 이날 기자가 6시를 조금 넘어 육지와 선유도를 이어주는 아치교인 선유교를 건너자 선유도 쪽에서 남성 성악가의 노래소리가 울려 퍼졌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 나오는 ‘지금 이 순간’의 한 대목이었다.


아담한 노천 원형극장에는 연인과 가족 등 100여명의 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시 낭송회를 보기 위해서다. 객석이라고는 길다란 나무 의자가 전부였지만 객석 곳곳에 개망초가 피어 있어 운치를 더했다. 객석 가장자리에 서 있는 느티나무 세 그루는 공연장을 감싸 안으며 객석의 더위를 식혀줬다.

10여분간의 짧은 성악 공연이 끝나자 머리가 허연 시인이 무대로 걸어 나와 시를 낭독했다.

“마음 아픈 사람들아/떠돌지 말고 찾아가자 숲으로. 숲 속 긴 오솔길에는/다람쥐 넘나드는/울창한 나무들이 있고/하늘 덮은 큰 잎 사이로/햇빛 실오라기 치렁치렁 넘치는/따뜻한 손길이 멈추는 곳/그곳 숲으로 가자…”

조명무 시인은 자신이 지은 ‘숲과의 만남’ 시 낭독을 마친 뒤 모윤숙 시인이 한국전쟁 당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뒤 쓴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낭독했다. 그는 “호국의 달을 맞아 모윤숙 시인의 시를 골랐다”며 “전쟁의 비극이 두번 다시 없어야 겠다”고 말했다. 시 낭독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아낌 없는 박수가 나왔다.

이처럼 토요일 저녁이면 선유도는 ‘시의 섬’이 된다. 서울시는 지난 5월부터 ‘시가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주제로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선유도에서 시낭송회를 열고 있다. 시 낭송 중간 중간에는 뮤지컬 주제곡 공연을 넣어 흥을 더했다. 이날 시낭송회에는 조병무 시인과 홍금자 시인, 서울시 ‘문학의 집’ 회원 등 5명이 무대에서 시를 낭송했다.

성악가들이 준비하는 동안 즉석에서 시인 알아 맞추기 퀴즈 대회도 열렸다. 사회자가 시를 읊으면 시인을 알아 맞추는 퀴즈로 정답을 맞추는 시민들에게는 시집이 주어졌다. 모든 관객들에게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과 김수영 시인의 ‘거미’ 시 문구가 인쇄된 책갈피도 1장씩 선물로 제공됐다.

아내와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에 다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낭송회에 온 직장인 노종호(39)씨는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시낭송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문학을 접할 기회를 갖게 돼서 좋다”며 “아이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 다음주에도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선유도 시낭송회’는 7월 4일부터는 저녁 8시로 옮겨져 오는 10월24일까지 매주 열린다. 한편 서울시는 한강 서래섬에서도 매월 마지막 토요일 8시에 시낭송회를 연다.

김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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