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위 오른 지구당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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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후보로 나선 정치초년병들이 자주 듣는 충고는 "지구당 사무실에 있지 말고 현장을 누벼라" 는 것이다.

정당의 지구당이 일반 유권자와는 유리된, 민원브로커.정치꾼들의 한담 (閑談) 장소였음을 자인 (自認) 하는 목소리인 셈이다.

정치개혁의 단골메뉴였던 '지구당 폐지' 가 이번 정치개혁 논의에 재등장하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

국민회의는 '정치자금의 블랙홀' 로 손꼽혀 온 지구당을 아예 폐지 (중.대선거구 경우) 하거나 연락사무소.후원회사무소로의 축소.통합방안을 검토중이다.

한나라당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원론에 이의가 없다.

경조사.당원단합대회 비용이나 유급직원.사무실 유지비로 최소 월평균 2천여만원이 든다는 지구당만 없애면 '돈 덜쓰는 정치' 가 되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그러나 지구당직원 몇명, 사무실 등 외양 정리만으론 '정치개혁' 은 요원하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국회사무처의 김영일 (金榮一.정치학박사) 정치담당연구관은 "소선거구제.정당 하부의 운영방식을 유지한 채 정치인의 심부름 센터격인 지구당만 폐지하면 '연구소' 등 또다른 사조직만 활개칠 뿐" 이라고 단언한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벌써 "언제든 선거조직화할 기초단체장.지방의원을 여권이 압도한 상황" 이라며 지구당 폐지에 의혹이 이는 터다.

그래서 일도양단식의 '지구당 존폐' 논박만으론 공염불이 될지 모른다.

때문에 '당비납부 - 정치자금 충당' '상향식 공천' 이라는 책임과 권리를 지구당에 주는 실질적 구조조정이 모색돼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된다.

국민회의 유선호 (柳宣浩) 의원은 "민원수렴.당정책 홍보기능을 지닌 지구당을 즉시 폐지하기는 어려울 것" 이라고 진단했다.

"공무원.교사 등 전문인력의 지구당 활동 참여확대, 당비납부 의무화, 상향식 공천권의 개혁방안이 필요하다" 는 입장이다.

대부분의 서구 정치선진국도 '민주적 지구당' '비대 중앙당 축소, 지구당 활성화' 라는 큰 흐름을 타고 있다.

영국노동당의 당원모집광고에는 "Join Us.Make a donation" 이라는 두 문장이 게재돼 있다.

당비헌납 (donation) 이 당원의 으뜸 요건임을 강조한 것이다.

당비를 비자카드로 낼 지, 아멕스카드나 다이너스카드로 납부할 것인지까지 기재토록 한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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