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의 13억 경제학] 확신의 버블(Bubble of Belief)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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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은행연합회에서 중국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좋은 자리였습니다.

서울대 이근교수께서 '중국의 경제 추격'을 주제로 발표를 해주셨고, 이어 고려대 김익수 교수께서 '중국경제의 대외경쟁력'을 주제로 고견을 주셨습니다. 정영록 서울대 교수, 한홍석 광운대 교수께서 코멘트 해 주셨습니다. 모두 한국의 최고 중국경제 전문가로 꼽히는 분들입니다. 그들이 벌이는 지식의 잔치에 취해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 세미나를 보면서 "우리나라 중국연구도 세계적인 수준이 됐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중국을 잘 모르지만, 그 분들이 제시한 분석의 틀은 매우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근 교수는 그의 추격이론 중에서도 아주 작은 편린을 보여줬지만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해외시장 진출을 기업경영 차원으로 끌어들여 설명한 김익수 교수 설명에도 공감했습니다.

세미나가 끝나갈 무렵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So What?'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우리의 중국연구는 매우 깊어졌습니다. 중국연구 하는 분들도 참 많아졌구요. 이제 한 단계 더 나가, '그래서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것을 깊이있게 보였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How to'를 세밀하게 제시해 달라는 거지요. 학문연구의 궁극적 목적이 민생복리(民生福利)아니겠습니까. 세미나건, 연구논문이던 'How to'가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이어야 한다는 얘기지요. 최소한 중국경제 연구에서는 그렇다고 봅니다.

물론 이날 세미나에서 사회를 맡으신 정 대사님께서도 말씀을 하셨듯 '많은 정책적 대안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정책대안 제시가 세미나의 목적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더 많은 'How to'를 요구하는 것은 그만큼 실질적인 지식에 대한 갈증이 심하다는 얘기겠지요?


(왼쪽부터)정재호 서울대 교수, 김익수 고려대 교수, 이근 서울대 교수, 정종욱 전 주중대사(사회), 한홍석 광운대 교수, 정영록 서울대 교수, 문흥호 한양대 교수

세미나를 지켜보면서 제 생각도 많이 정리가 되더군요. 그게 바로 세미나의 힘인 듯 싶습니다.

저의 생각을 감히 펼쳐보이자면,

그동안 한국과 중국은 분절(Fragmentation)된 생산분업으로 서로 많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한국에서 부품을 생산해서, 중국에서 조립해 제3국에 수출하는 형태였지요. 이는 한국-중국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지역 모든 국가들이 참여한 분업 형태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LCD,일본에서 전자총, 태국에서 몸체, 말레이시아에서 박스 등을 만들고, 이를 중국으로 수출하면, 중국에서는 싼 임금의 노동자들이 TV를 조립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구조입니다. 이 TV에는 'Made-in-China'라는 라벨이 붙었지만 실질적으로는 'Made-in-Asian'라고 해야 옳습니다(김익수 교수께도서 그 점을 언급하신 것으로 압니다).

앞으로 이 구조는 크게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통합되는 것이지요. 그냥 통합이 아니라 지역적 통합입니다. '클러스터링(clustering)'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업종의 업체끼리 한 지역에 몰리는 겁니다. 예를 들어 상하이 주변에서 생산되는 노트북PC는 전세계 생산량의 약 50% 이상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상하이 노트북PC 부품의 98%가 이 지역에서 조달 가능하다는 겁니다. 상하이 주변에 '노트북PC클러스터'가 형성된 겁니다.

동아시아에는 이미 많은 클러스터가 형성됐고, 또 형성되고 있습니다. 아시아 최대 산업단지로 발돋움하고 있는 상하이 주변 '창산자오(長三角)클러스터', 일찌감치 컴퓨터 가전산업으로 성장한 광둥성의 '주장(珠江)클러스터' 등은 대표적인 중국의 클러스터입니다. 일본과 말레이시아와 태국, 인도네시아에도 있습니다(삼성경제연구소 박번순 박사의 연구를 주목할 만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왜 없겠습니까? 남해안의 '조선클러스터', 울산의 '자동차클러스터', 수원의 '반도체 클러스터' 등이 있습니다.

핵심은 앞으로 국내에도 이같은 클러스터를 많이 조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변화하는 동아시아 생산분업구조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입니다. 앞으로 동아시아에서는 이같은 클러스터를 많이 갖고 있는 나라가 경쟁우위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산업별로 집적된 생산분업단지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정부의 정책 판단이 중요합니다.

기업은 어떻게 하느냐구요?

기업은 이제 클러스터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할겁니다. 그 클러스터가 어느 나라에 있는 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노트북PC 부품업체라면 상하이로 가야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상하이의 노트북PC업체(조립공장)가 한국의 부품업체로부터 수입을 해갔지만, 앞으로는 상하이 주변에 있는 업체에서 부품을 조달할 것입니다. 주변에 부품공장이 많은 데 굳이 한국에 손을 벌릴 필요가 없습니다.

중국에는 기술이 없다구요? 옛 말이 되어가고 있는 얘기입니다.

중국이 2000년들어 '자주창신(自主創新)'을 외친 게 바로 그 취지입니다. 자국 내 완결형(Full-set)공업구조를 갖추자는 것이지요. 부품의 수입의존도를 낮춰 자국에서 제품을 일관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자는 겁니다. 한국에서 더이상 부품을 수입하지 않아도 되도록 자국의 기술경쟁력을 높이는 것, 그게 '자주창신'전략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중국이 개발한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닙니다. 해도 안 되는 기술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대륙으로 끌어들이는 겁니다.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지요. 그래도 안되는 기술이 있을 겁니다. 그런 기술은 '달러를 싸들고 가 기업을 몽땅 사들이자'는 게 그들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역시 기술은 새로운 형태의 분업구조에서도 핵심입니다. 한 발 앞 선 기술을 가진 업체는 클러스터의 선택범위가 넓고, 또 클러스터의 중추가 될 수 있을테니까요. 우리가 중국보다 연구개발(R&D)에 앞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국전체를 거대한 R&D센터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쨌든 동아시아의 생산분업 구조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클러스터입니다. 기업은 해당 분야 클러스터를 따라 움직일 것입니다. 그게 한국에 있던, 중국에 있던, 말레이시아에 있던 말입니다. 다만 여러 여건으로 보아 중국에 형성되고있는 클러스터가 흡인력이 강해 보입니다. 기술력이 있는 많은 기업은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국에 형성되고 있는 해당 산업의 클러스터를 따라 이동해야 할 겁니다.

23일 세미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했다는 점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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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칼럼의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최근 중국경제를 라운드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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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경제, 지금 분위기 좋다. 중국 국내외에서 낙관적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세계은행은 지난 18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올해 중국경제가 7.2%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골드만삭스는 아예 성장률 전망치를 8.3%로 올렸다. 중국정부 목표치 8%를 넘긴 것이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소시에테 제네랄의 투자전략가인 앨버트 에드워즈는 "중국경제가 잘 될 것이라는 믿음 그 차제에 거품이 끼었다"며 '확신의 버블(Bubble of Belief)’을 경계했다. 중국경제는 그동안 잘 될 것이라는 '신심(信心)'으로 버텨왔는데, 그 믿음에 버블이 끼었다니...

어쩌자는 건가?

잠깐, 오늘 너무 길었나요?
예,
이어지는 글은 다음 주 월요일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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