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작가 12명이 그린 12색깔 ‘이화인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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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이대 나온 작가’들에 의한 ‘이대의 소설’이 출간됐다. 이화여대 출신 소설가 12명이 작품을 쓰고 이대출판부에서 출간한 『이화, 번지점프를 하다』가 그것이다. 소설집은 이대출판부 설립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7년부터 준비됐다. 기획을 맡은 이 대학 국문학과 김미현 교수는 “소문이나 농담처럼 이야기되곤 하는 이화여대의 피상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속살, 육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출신 작가들. 왼쪽부터 권리·오현종·고은주·배수아·정미경·함정임·김다은·김향숙·권지예·이청해씨. [연합뉴스]


외유 중인 우애령(64)씨를 뺀 11명이 갓 출간된 책을 들고 24일 모교를 찾았다. 이청해(61)·한정희(59)·김향숙(58)·정미경(49)·권지예(49)·김다은(47)·함정임(45)·배수아(44)·고은주(42)·오현종(36)·권리(30) 씨다.

한껏 차려 입고 캠퍼스를 거니는 이들은 길게는 수 십년 저쪽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환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권지예씨가 소설집의 성격을 압축해 표현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우애령 선배 외에 오늘 100% 참석률이 보여주듯 이대생은 겉으로는 모범생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열정적이고 자유분방한 기질이 있는 것 같다. 각자의 개성과 열정이 소설집 안에 녹아 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공통의 주제를 먼저 정한 후 작품을 ‘발주’하는 테마소설집의 묘미는 작가에 따라 주제가 다양하게 변주된다는 점이다. 이번 소설집도 예외가 아니다. 이대는 추억 속에 존재하는 단순한 공간 배경이기도 하고, 살아갈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함정임씨의 ‘상쾌한 밤’은 전직 펀드매니저 ‘하린’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복 여동생으로 인해 오래전에 이별한 생모와 화해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 작품에서 이대는 ‘하린’이 학창시절 아내를 만나던 공간으로만 잠깐 등장할 뿐이다. 함씨는 “소설을 쓰고 보니 내가 대학 시절 자주 가던 이대 후문 근처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그만큼 이대가 함씨 내면에 차지하는 자리가 크다는 얘기일 게다.

고은주씨의 ‘그곳에 가면’에서 이대는 소설 주제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고씨는 “전업주부인 주인공을 통해 이대 출신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매일 모교를 방문하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통념 속 이대의 이미지와 실제와의 차이를 날카롭게 파고든 작가는 12명 중 막내인 권리씨다. 권씨는 작품 ‘정박’에서 “이대라는 이미지를 브랜드처럼 ‘입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학비를 대지 못해 떠나야 하는 학생이 있는 현실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각 작품은 결국 이대에 얽힌 청춘의 이야기다. ‘번지점프를 하다’를 쓴 정미경씨는 “20대는 번지점프처럼 탄성과 회복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라며 “젊은 시절 이야기를 쓰다가 덩달아 젊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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