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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 뇌사자와 달리 스스로 호흡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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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6월 24일자 1면에 가족의 요청으로 존엄사를 선택한 70대 할머니가 생명이 유지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존엄사를 시행하면 바로 사망하는 게 아닌가. 존엄사는 어떤 상태에 있는 환자에게 하며, 어떤 방법으로 하는가. 또 안락사와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A 존엄사를 시행한다고 바로 죽는 건 아니다. 의사들도 공통적으로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힘을 의료진이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라고 설명한다.

미국에서 존엄사가 활성화된 계기가 된 캐런 퀸란은 1976년 인공호흡기를 뗀 후에도 10년을 더 살았다. 20대 여성이었던 퀸란은 약물 중독으로 뇌에 손상을 입어 식물인간이 된 상태였다. 23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존엄사는 환자 김모(77·여)씨의 인공호흡기를 떼는 것이었다. 김씨는 지난해 2월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뇌가 손상돼 식물인간이 됐다. 김씨는 당시 정상보다는 약하지만 스스로 호흡할 능력이 남아 있었다. 호흡기는 제거됐지만 여전히 영양공급은 하기 때문에 김씨가 스스로 숨을 쉬는 한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 의료진은 항생제 등 약물이 필요한 경우에는 치료를 계속할 계획이다.

의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존엄사를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치료, 즉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무의미한 치료가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의미에서다. 심폐소생술을 하거나 인공호흡기로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 대표적인 연명치료다.

존엄사와 달리 안락사는 대개 의사가 적극적으로 환자의 죽음을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독극물 등을 투여하기 때문에 바로 사망하게 된다. 하지만 ‘안락사’나 ‘존엄사’ 모두 법적인 용어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종교계에서는 여전히 존엄사를 안락사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의사가 직접 나서 환자에게 약물 등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아니지만 치료를 중단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으므로 ‘소극적 안락사’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존엄사의 대상이 되는 환자는 ‘회복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한 경우’다. 말기 암환자가 대표적이다. 대법원이 김씨의 존엄사를 허용한 것도 ▶의학적으로 의식의 회복 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뇌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는 존엄사 허용 여부를 판단할 뚜렷한 의학적 기준이 없다.

김씨의 경우 의학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식물인간(PVS) 상태였다. 식물인간은 대뇌 기능은 정지됐지만 뇌간 일부와 소뇌의 기능은 살아 있어 호흡이나 순환이 유지되는 상태다. 여기서 뇌간과 소뇌의 활동까지 멈춰버리면 뇌사(腦死)가 된다.

뇌사 환자는 외부 자극에 반응할 수 없지만 식물인간인 환자는 눈을 뜨거나 손발을 움찔하는 등 간단한 반사작용을 한다. 뇌사는 장기이식을 전제로 인정하지만 식물인간은 여전히 생명이 유지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식물인간 중에서도 김씨처럼 4주 이상이 지나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를 PVS라고 한다. 현재 국내에는 김씨처럼 의학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한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가 3000여 명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존엄사의 대상이 될지는 논란거리다. 이들 중에는 극히 일부지만 기적적으로 회복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은하 기자,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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