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1국' 제주도 귤림당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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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기 왕위전 도전기 1국
[제1보 (1~19)]
黑.李昌鎬 9단 白.李世乭 9단

서울에선 비가 쏟아졌다. 김포공항은 물안개가 자욱했다. 그런데 불과 한 시간 후 도착한 제주도의 하늘은 티없이 맑고 높아 갑자기 딴 세상에 온 느낌마저 든다.

제주시장의 초청을 받고 바닷가 횟집으로 갔다. 고등어.전복.갈치.다금바리.자리돔… 온갖 종류의 싱싱한 생선회가 선을 보인다. 저쪽 가까운 바다에 갈치잡이 배의 불빛들이 아름답게 나타날 즈음 이세돌은 식사도 마다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결전을 앞둔 도전자는 혼자 조용히 쉬고 싶어했다. 이 왕위는 술을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제주도 바둑인들의 소주 공세를 몇잔인가 묵묵히 받아들였다.

이튿날, 그러니까 7월 16일 이창호-이세돌의 빅매치가 시작됐다. 10년 무적의 이창호와 그를 몇차례 쓰러뜨렸던 이세돌이란 강적이 왕위 타이틀을 놓고 1년여 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대국장은 조선시대의 제주도청이라 할 제주목 관아에 차려졌다. TV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관비로 쫓겨와 살던 곳이다. 그곳 귤림당이란 건물에 바둑판이 놓였는데 에어컨도 없는 옛 건물이지만 사방에서 부는 바람에 마음속까지 시원해진다. 참으로 바둑둘 맛 나는 그윽한 장소였다.

돌을 가려 李왕위의 흑. 지역의 TV 등 수많은 카메라들이 기다리는 가운데 우상귀 소목에 첫점이 떨어졌다. 10분 후 기자들이 모두 떠나고 대국장은 다시금 적막을 되찾았다.

흑7은 견실함을 원하는 李왕위의 심정을 보여준다. 반대로 18은 이세돌다운 강수. '참고도'처럼 두면 쉽게 타협할 수 있지만 18로 둔다면 전투를 피할 수 없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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