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경쟁력이다] 거창연극제 집행위원장 이종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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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산골동네에서 지역 연극제를 만들어 국제연극제로 일궈낸 이종일(51)집행위원장은 스스로 고생길을 택한 사람이다. 그는 연극제에 전념하기 위해 96년 중학교 영어교사를 그만뒀다.

연극제를 이끌어오느라 진 빚 1억5000여만원의 이자 때문에 요즘도 허덕이고 있다. 거창읍내 28평형 아파트마저 은행에 잡힌 지 오래다. 하지만 그는 "하고 싶어서 한 일이므로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 때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그는 1980년 거창 대성고 교사로 부임한 3년 뒤 교사.공무원.간호사 등 19명으로 지역극단 '입체'를 만들었다. 87년엔 거창양민학살사건을 다룬 연극을 준비하다 군 보안대로부터 포기 압력을 받았으나 끝까지 무대에 올렸다.

그는 96년 10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니혼대 대학원에서 무대예술을 전공, 4년 만에 석사학위를 딸 때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거창으로 건너와 연극제를 주관했다.

일손이 모자라자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연극을 하던 동생 종철(49)씨를 내려오게 해 84년부터 무대 설치작업을 맡겼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두 아들도 여름방학 때만 되면 내려와 아버지를 돕는다.

그는 해마다 자연 속 야외무대를 하나씩 늘리는 작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올해는 물놀이하면서 연극을 관람할 수 있도록 계곡 안으로 10m쯤 튀어나온 수상무대를 설치한다. 내년에는 석재를 캐낸 뒤 방치되고 있는 폐광산을 무대로 활용해 지역 특산물을 알릴 계획이다.

그의 꿈은 거창연극제를 프랑스 아비뇽을 능가하는 국제연극제로 키우는 것이다.

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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