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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이 한반도보다 먼저 통일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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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3년 동안 서울 주재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최근 귀국한 중국인 친구가 들려준 ‘한국인과 중국인 비교법’이 귀를 솔깃하게 했다. 한국인은 일단 행동한 뒤 생각(作了再想)한다. 반면 중국인은 여러 번 생각한 뒤 행동(想了再作)한다. 두 방식에는 장단점이 있다. 전자는 기회를 재빨리 포착할 확률이 있지만 성공 가능성은 의외로 낮다. 후자는 기회를 놓칠 우려가 높지만 실패할 위험성은 낮다. 현상을 단순화했지만 두 나라 사람의 사고 방식과 행동 유형 차이를 정곡을 찔러 흥미롭게 포착했다.

한민족과 한족의 성향 차이를 살필 수 있는 또 다른 영역이 있다. 두 민족의 상이한 통일 접근법이다. 한반도와 양안(兩岸)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분단 지역들이다. 통일은 한반도와 양안의 민족적 사명이다. 그러나 두 민족의 통일 노력은 방법론 면에서 상당히 다른 궤적을 따라가고 있다. 통일부 이도기(39·행시 43회) 사무관은 중국인민대학 마르크스대학원에서 ‘한반도 남북 통일과 중국 양안 통일 비교 연구’로 최근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서독 통일 방안 비교 연구는 많지만 한반도와 양안의 비교 연구는 드문 시도다.

한반도와 양안 중 어디가 먼저 통일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 사무관은 주저 없이 “현재로선 양안이 먼저”라고 단언한다. 통일에 접근하는 방법론 차이에서 통일 실현 가능성의 차이를 발견했다는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한민족의 통일 노력은 7·4선언에서 시작해 남북합의서를 거쳐 6·15와 10·4선언으로 이어졌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정치적 이벤트가 속출했다. 이런 선언들만 놓고 보면 한반도 통일은 이미 실현되고도 남음이 있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많지 않았다는 평가다.

반면 한족의 통일 노력은 요란하지 않다. 1992년 양안의 반관반민(半官半民) 채널이 ‘하나의 중국’이란 대원칙에 합의하면서 발표한 ‘92 공식(共識:컨센서스)’이 고작이다. 양안 교류는 소3통(통신·통항·통우)에서 대3통으로 오랜 기간 단계를 밟아 진행됐다. 그 결과 지금은 한반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민간 교류가 넓고 깊어졌다. 대만 자본이 상하이(上海)에 민영 화이(華一)은행을 개설해 영업 중일 정도다. 심지어 대만인 교수와 학생들이 중국의 대학에서 중국인들과 자유롭게 통일 방안을 놓고 토론한다. 서울대 교수와 남한 학생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한민족연합론이나 고려연방제를 놓고 대화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한민족의 통일은 권력자와 정치권의 주도로 하향식으로 진행돼 왔다. 그렇다 보니 국민적 합의 기초가 약하다. 전향적 내용을 담은 선언들이 정권만 바뀌면 동력을 잃는 이유는 깜짝쇼 비용을 뒤늦게 치르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한족의 통일 방식은 상향식이다. 민간에서 실천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진행되니 외풍에 강하다.

우화 속에서 경솔한 토끼와 차분한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는 이미 끝났지만 한민족과 한족의 통일 경주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뒤늦게 원칙을 깨달은 토끼가 거북이를 대역전할 기회는 아직도 남아 있다.

장세정 베이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