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게 걱정이던 태백 소년, 지금은 매출 112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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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쎄크 대표가 경기도 수원 소재 사업장에서 산업용 X선 검사기로 자동차 부품의 결함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쎄크 제공]


“꿈요? 그런 건 사치였지요. 어릴 적엔 먹고사는 일밖엔 별로 기억나는 게 없어요.”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 나이에 ‘돈을 벌어야겠다’는 절박한 생각에 두 손을 불끈 쥔 시골 소년이 있었다. 강원도 태백에서 광원으로 일하는 아버지, 보살핌이 필요했던 어린 두 동생들과 할아버지. 소년은 10대부터 새벽같이 장사 나간 어머니 대신에 동생들 아침밥을 챙겨주고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주말엔 가사에 보탬이 되겠다고 술안주 노가리의 내장 빼내는 ‘알바’도 했다. 지금은 직원 71명을 고용하고 연매출 112억원을 올리는 제조업체 사장이 됐다. 주변에서도 그의 자수성가를 알아주기 시작했다. 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이 매달 선정하는 ‘이달의 기능 한국인(6월)’으로 22일 선정된 것. 경기도 수원시 원천동의 정밀기기 업체 ㈜쎄크(www.seceng.co.kr)를 운영하는 김종현(46) 대표다.

성공의 씨앗은 태백기계공고 시절 싹텄다. 기술 익히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적성에 맞았다.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다는 선배들 말에 고교 3년간 밤낮을 잊고 훈련에 몰두했다. 졸업반 때 지역 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덕분에 졸업 전에 삼성전자에 덜컥 붙었다. 내친김에 2년 뒤인 1983년,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린 제27회 국제기능올림픽 기계제도 부문에 출전해 당당히 세계 최고의 장인(금메달)이 됐다.

“일에 대한 집념이 생기니 승진도 빠르더군요. 하지만 직장생활 꼭 10년이 되자 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견딜 수 없었어요.”

자동화 기계설계 파트의 축적된 경험을 밑천 삼아 28세이던 91년에 독립했다. 20대 기능인 후배 4명과 함께였다. 직장생활 10년간 저축해 간신히 장만한 자그마한 아파트를 잡혀 대출받은 것이 종잣돈. 처음엔 가시밭길이었다. 불철주야 일에 매달렸지만 주문이 둘쭉날쭉했다. 차별화된 핵심 제품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기술만 믿고 관리가 엉성하면 회사를 말아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낭패감도 들었다. 설상가상 협력회사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5년 동안 빚을 갚느라 하늘이 노랬다.

그러다 90년대 후반 반도체 제조 장비가 잘 팔리기 시작했다. X선 검사기(2002년), 전자현미경(2006년) 같은 제품이 호응을 얻었다. 불경기에도 매출의 15% 정도는 연구개발에 쏟았다. 27건의 특허 중 16건을 김 사장이 손수 취득할 정도로 기술에 매달린 것. 지난해엔 초정밀 ‘개방형 X선 발생장치’ 기술로 국가 신기술 인증(NET)을 획득했다. 이제 중국·일본·미국·유럽 등지에 수출까지 한다. 디스플레이와 X선 등 일부 검사장비 분야에선 알아주는 업체가 됐다. 이 회사가 그동안 채용한 국내외 기능대회 입상자는 모두 40명. 김 사장은 오늘날의 결실을 이들의 땀 덕분으로 돌렸다.

“기능인이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일반의 인식이 좀 더 개선됐으면 좋겠어요. 일부 직종에선 기능올림픽 입상자조차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다고 해요.”

김 대표의 아들(20)도 아버지처럼 공고를 나와 ‘장인’의 길을 택했다. 부친 밑에서 강훈을 받고 있다. 이제 자녀를 흔한 해외유학 보낼 정도의 여유가 생겼건만 공부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들을 굳이 대학에 보내지 않았다.

홍승일 기자

◆‘이달의 기능 한국인’=국내 우수 기능인의 성공사례를 발굴해 널리 알리려고 2006년 8월 정부가 제정한 월례 포상 제도. 한국산업인력공단 6개 지역본부와 18개 지사, 노동부 지방관서에 서류를 갖춰 응모하면 된다. 웹사이트(www.hrdkorea.or.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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