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과 비교할 수 있게, 한 곳서 꾸준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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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호 15면

건강검진은 연령, 가족병력, 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적합한 항목을 선택해야 한다. 사진은 컴퓨터단층촬영(CT)을 받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50대 중반의 허충재씨는 얼마 전 의례적으로 직장인 무료검진을 받았다. 그런데 담당 의사가 이상소견이 있다며 위 내시경과 대장검사를 추가로 권했다. 진단 결과는 간암 초기. 평소 술을 자주 마셔 만성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앓고 있던 허씨지만 간암 소식은 청천병력과도 같았다. 다행히 검진을 통해 간암을 초기에 발견한 덕분에 곧바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내게 맞는 병원은 어디<17> 건강검진을 하려면

이처럼 직장인 대상의 무료건강검진이나 종합건강검진을 통해 생각지도 못했던 질병을 발견해낸 이들이 적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질환들 대부분은 특별한 증세 없이 슬그머니 우리 몸에 자리 잡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이 건강하다고 자신할 때야말로 주기적인 건강검진이 꼭 필요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막상 건강검진을 받으려 해도 어디로 가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는 이들이 많다. 특히 본인이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라면 의료기관 선택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된다. 해마다 여러 다른 병원을 돌아다니며 검진을 받는 이들도 있다. 검진기관마다 의료진이나 검사 장비 수준, 혹은 기본 비용에 포함되는 검사 항목이 조금씩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건강검진은 가급적 집이나 직장에서 가까운 의료기관을 선정해 지속적으로 받는 것이 좋다. 건강검진의 목표는 치료를 위한 정밀진단이 아니라 예방이다. 심각한 질환으로 진행될 수 있는 요인을 발견해 미리 차단하거나(1차 예방), 이미 발병한 질환을 조기 진단해 서둘러 치료나 관리를 받을 수 있게(2차 예방) 하려는 것이다. 이런 목표에 맞게 검진 결과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비교 가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올해 간기능 수치가 그다지 좋지 않게 나왔다 하더라도, 예년에 비해 오히려 나아진 결과라는 사실을 아는 의사라면 음주 습관 등 몇 가지 주의 사항만 권할 수 있다. 반면 그 변화를 모르는 의사라면 필요 없는 추가 검사를 권한다거나, 위협적인 경고로 부담감을 줄 수도 있다. 반대로 예년에 비해 나빠진 결과인데 의사가 그 차이를 몰라 정확히 지적해주지 못할 경우 “매번 듣는 소리”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가 심각한 상태에 이른 뒤에야 병을 발견할 수도 있다.

같은 40만원짜리 종합검진 프로그램인데 검진기관에 따라 위·대장 내시경 검사, 컴퓨터단층촬영(CT), 유방암 검사 등 비용에 포함돼 있는 정밀검사 종류가 달라 선택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이런 때는 각 검사가 필요한 주기에 맞춰 그때마다 같은 곳을 찾아 검사를 받는 것도 방법이다. 이때도 이전에 다른 기관에서 받았던 검진 결과를 가지고 가서 공통된 검사 항목 결과는 비교해 봐달라고 부탁하는 게 좋다.

일반적으로 검진기관의 규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시설이나 장비로 인한 검사 결과의 차이도 미미하다. 부모님에게 육순이나 환갑·칠순 등을 기념해 대형 병원의 값비싼 ‘효도검진’을 받게 해드리는 경우가 있는데, 건강검진은 효도관광과는 다르다. 일회성보다는 부모님의 건강 상태에 맞춰 좀 더 작은 곳에서라도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으실 수 있도록 하는 게 훨씬 나을 수 있다.

대형 병원 검진센터의 장점은 심각한 질환이 발견됐을 때 이후 진료와 치료가 원활하게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마다 의심되는 특정 질환을 살펴볼 수 있는 정밀검사 프로그램도 비교적 다양하다. 반면 건강검진만 특화한 기관의 경우 사후 진료 및 치료와의 연계성이 떨어지는 대신 비교적 싼값에 주요 검사들을 두루 받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동네 의원급에서 종합검진을 받으면 만성 질환 등을 사후 관리하기에 좋다.

최근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진행하는 국가건강검진 내용도 많이 충실해졌다. 국가검진은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큰 고려 대상이기 때문에 검사 항목이 여전히 적다. 그렇다고 해서 검사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본인 부담금 없는 국가검진을 통해서든, 몇십만원짜리 종합검진 프로그램을 통해서든 같은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받았다면 그 결과는 같다는 얘기다. 비효율적인 검진 절차도 개선됐다. 예를 들어 고지혈증 검사는 1·2차로 나뉘어 있던 콜레스테롤, 고밀도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검사를 1차에 모두 받도록 했다. 전에는 1차의 콜레스테롤 검사에서 이상을 보인 경우 2차 검사를 받기 위해 의료기관을 다시 방문해야 하는 데다, 서로 다른 날 검사한 결과들을 비교하게 돼 진단의 정확성도 오히려 떨어질 수 있었다.

국가검진은 검사 항목이 적어 기본 요건을 갖추고 신고만 하면 어떤 의료기관이든 검진기관이 될 수 있었다. 부실 논란이 일었던 이유다. 그러나 이젠 지난 3월부터 시행된 건강검진기본법에 따라 국가가 검진기관을 지정·지정취소·평가 등을 할 수 있게 됐다. 아직 소비자들이 참고할 만한 평가 기준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지만, 우선은 신청·지정 기준을 좀 더 꼼꼼히 살펴보면 도움이 될 만하다. 이를테면 일반검진의 경우 하루 검진 인원 25명당 1명의 의사를 두어야 검진기관 신청 자격이 있고, 출장검진기관은 하루 최대 검진 인원이 일반검진 100명, 암검진 70명이어야 한다. 즉, 적은 인원으로 너무 많은 사람을 검진하는 곳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시설이 너무 노후한 건 아닌지, 검진 결과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은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 등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번 호로 ‘내게 맞는 병원은 어디’의 연재를 마칩니다. 이전 기사는 중앙SUNDAY 홈페이지(sunday.joins.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도움말=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건진센터 이상현(가정의학과) 소장, 보건복지가족부 건강정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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