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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대학보다 사랑받는 대학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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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요즘은 평가의 시대다. 사람은 조직에서 인사고과라는 평가를 받고 기업은 기업대로 자본시장에서는 주식 가격으로, 신용평가기관에서는 신용등급으로 평가를 받는다. 대학들도 평가를 받는다. 일반적으로 대학 평가에서 중요한 평가 항목은 연구(약 60%)와 교육 수준(약 20%)이다. 물론 대학의 제1 사명은 연구와 교육이니 이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학은 연구와 교육을 통해 국가의 지적재산을 쌓아 나가고, 뒤를 이을 유능한 후세들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이웃과 사회에 희망을 심어 주는 사회적인 책임 또한 잊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명이다. 대학은 소수의 엘리트가 더욱 잘 먹고 잘살도록 능력을 배양시키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곳이 아니다. 사회의 리더로서 구성원들이 더 행복하고 희망 찬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일에 앞장설 수 있는 자질을 기르는 곳이다. 하버드대를 중퇴했다가 지난해 드디어 명예학사를 받은 빌 게이츠는 졸업식에서 하버드대 졸업생들에게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세계의 빈민층을 구하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50위권 대학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대학들은 전통적으로 대학의 지역사회 봉사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당해 모 대학이 장학금을 받는 대학생들로 하여금 저소득층 초·중·고교 학생을 돌봐주는 멘토링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다. 또 어떤 대학에서는 실업자들의 취업을 돕겠다면서 ‘학교 강의 무료 개방’을 선언한 바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대학이 비로소 사회의 고통받는 계층을 적극 돕고 대학 주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사회의 위기 상황에서 행하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대학의 중요한 역할로 인식해 보다 근본적이고 지속적으로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최근 미국의 경영학자 시소디어 교수는 위대한 기업보다 사랑받는 기업이 장수할 뿐만 아니라 이익도 더 많이 낸다고 발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도 요즘은 장기적 생존을 위해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대학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는 이유는 학생들의 인성 교육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사회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대학은 결코 세계적인 대학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도 이제는 근시안적인 이기주의적 집착에서 벗어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위대한 대학을 넘어 사회가 자랑스러워하는 대학이 될 것이다. 우리 대학들이 주변을 둘러보고 이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사회적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고귀한 대학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주인기 연세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