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5만원권’ 화폐 비용 연 4000억 줄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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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23일부터 5만원권 지폐가 시중에 유통된다. 1973년 1만원권이 발행된 이후 36년 만에 새로운 최고액권이 등장한 것이다. 고액권을 발행하게 된 배경과 예상되는 경제 효과 등에 대해 알아본다.

경북 경산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 직원들이 신사임당 초상화가 인쇄된 5만원권의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중앙포토]

◆고액권 발행 배경=현재 우리나라의 소득과 물가, 경제 규모에 비해 최고액권의 액면가가 지나치게 낮다. 1만원권이 처음 등장한 1973년 이래로 현재까지 소비자물가는 14배, 1인당 국민소득은 110배 이상 성장했다. 최고액권인 1만원권으로는 두 사람의 한끼 식사값도 모자랄 정도다.

최고액권이 경제 현실에 맞지 않자 10만원권 자기앞수표 사용이 빈번해졌다. 자기앞수표는 화폐와 달리 발행·지급·정보교환·전산처리와 보관 등과 관련된 사회적 비용이 적지 않게 발생한다. 연간 2800억원이 수표 처리에 소요돼 왔다. 한국은행은 고액권 발행으로 수표처리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최고액권의 역할을 담당하던 1만원권에 대한 수요도 점차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한해 동안 유통된 지폐의 92.3%(매수 기준)가 1만원권이었다. 고액권 사용이 일반화돼 현재 1만원권 수요의 40%만 줄어도 화폐의 제조와 관리 비용 가운데 4000억원이 절감되는 효과가 있다.

◆과소비와 물가 상승 우려=고액권이 발행되면 기본 사용 금액의 단위가 높아져 과소비가 조장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유통업체들도 고액권 발행과 때를 맞춰 ‘전품목 5만원 균일가전’ ‘5만원 베스트 상품전’ ‘5만원 구매왕 선발’ 등 다양한 판촉 행사를 벌이고 있다. 2만9000원, 3만9000원이 주를 이루던 기획상품 가격도 4만9000원으로 상향 조정되고 있다. 수표를 사용할 때는 정보 조회나 신상정보 이서 등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고가 제품의 구매를 꺼리던 소비자들이 고액권 사용으로 쉽게 지갑을 열 것이란 예측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고액권이 물가를 자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유럽의 경우 유로화 도입 이후 고액권이 발행됐지만 물가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는 것이다.

고액권이 뇌물 수수나 비자금 조성 등 범죄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고액권 거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처벌을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리디노미네이션의 가능성은=5만원권 발행이 현실화되자 화폐의 액면 단위 자체를 변경하자는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논의도 재기되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한 나라의 화폐 액면가를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끌어내리거나 통화 단위와 호칭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이미 53년 긴급통화조치에 따라 100원을 1환으로, 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맞물려 10환을 1원으로 리디노미네이션한 경험이 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화폐단위 변경은 가까운 장래에 추진할 계획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각종 거래 수치를 경(京·1 다음에 0이 16개) 단위로 표기해야 하는 실정을 감안하면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그치지 않을 듯하다.

  박형수 기자

※도움말=박병걸 한국은행 조사역,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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