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대물림 끊으려 5만 명에 장학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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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누스 총재가 18일 이화여대 대학원관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69·사진) 그라민 은행 총재가 18일 오전 서울 신촌 이화여대 캠퍼스를 찾았다. 이화여대 평화학연구소 초청으로 방한한 그는 이날 학생들과 만나 ‘갈등해결과 사회통합’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유누스 총재는 빈민층에게 담보 없이 돈을 빌려줘 자활을 돕는 ‘마이크로 크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운동의 대부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도 이 공로 때문이다. 그는 방글라데시의 치타공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76년, 빈민들의 생활상을 지켜보다가 이 같은 대출 제도를 고안하고 그라민 은행(‘방글라데시어로 ’마을 은행‘이란 뜻)을 만들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해 고리대금업자들에게 시달리는 것을 목격하고 이들을 구제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은행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기회 제공을 강조했다. “가난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지 개인의 잘못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기반만 주어진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죠. 사회가 그런 기반을 제공해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라민 은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은행 설립과정의 어려움을 묻는 학생의 질문에 “불신이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답했다. “처음 은행을 시작할 때 담보도 없이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더니 많은 사람이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더군요. ‘가난한 이들을 꾀어 돈을 빌려준 뒤 갚지 못하면 이상한 종교를 강요할 것’이라는 악소문도 돌았죠. 천천히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갔습니다. 은행이 자리 잡는 데까지 6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라민 은행은 현재 방글라데시를 넘어서서 아프가니스탄·카메룬 등 전세계 여러 저개발국은 물론 미국·캐나다·프랑스 등 선진국을 포함해 전세계 40개 나라에서 2500여 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연간 700여 만 명이 1인당 평균 130달러 정도를 대출받고 있다. 상환율은 2007년 기준으로 98%를 웃돈다.

그는 “가난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며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지금까지 5만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어 지속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방글라데시에선 고등교육을 마치고 좋은 직업을 얻어 가난의 고리를 끊는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교육만큼 확실한 투자는 없습니다.”

유누스 총재는 학생들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타인과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감’을 당부했다. “우리는 항상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구상에서 가난한 사람을 한 명도 찾을 수 없을 때까지 이런 노력이 계속 돼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이 땅과 이 땅 위의 모든 것을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늘 아름답게 가꿔야 합니다. 그것이 미래를 생각하는 삶입니다.”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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