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여고괴담'서 청순연기 이미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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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직도 한국 여배우에게 결혼은 인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을 각오해야하는 모험이다. 그런 면에서 이미연 (27) 은 인기관리에 둔감했거나 아니면 자신을 과신했다.

한창 인기를 누릴 나이 스물넷에 불쑥 한 남자, 배우 김승우를 택해버렸으니. 역시 현실은 냉혹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95년) 이후 영화 제작자들로부터 연락이 뚝 끊겼다.

그러다 지난해 '넘버3' 와 '모텔선인장' 에 얼굴을 내밀었고 그중 '넘버3' 가 성공해 좀 바빠졌다.

30일 개봉되는 '여고괴담' 에서 모교에 부임한 교사로 출연한 그녀는 감회가 새롭다. 고3의 나이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89년) 의 주연을 맡아 굳혔던 자신의 깨끗한 이미지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초등학교때 강북에서 강남으로 전학하면서 따돌림을 많이 당했다. 이번 영화가 학생들 사이의 따돌림, 선생과 학생들간의 불신, 편견 등에 관한 이야기라 그 때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

박기형감독도 나이 (31세)에 맞지 않게 노련하게 현장을 장악해 많은 걸 배웠다.

결말이 조금 강한 톤으로 끝났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빼고는 아주 만족스럽다. " 고1때 미스 롯데로 뽑힌 이후 '사랑이 꽃피는 나무' 를 한 3년하면서 굳힌 이미지 탓인지 이미연하면 '청순' 하다는 느낌부터 떠올린다.

'넘버3' 에서 깡패동거녀이면서도 '시를 좋아하는' 성격을 부여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녀는 이런 고정된 이미지가 '무지무지' 싫단다.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의 이중성이 있다.

겉으론 드러나지 않는 추악한 면을 연기하고 싶다.

93년 '창밖에 태양이 빛난다' 는 드라마에서 악녀 역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연기에 푹 빠졌었다.

내 안에 잠재한 그런 능력을 끄집어내 줄 수 있는 감독이나 제작자를 만난다면 대단한 행운이겠다. " 미안한 말이지만, 깨끗한 외모에 비해 그녀의 첫인상이 결코 '지적' 이지는 않다.

하지만 두어시간 얘기를 하다보니 자기 주장이 분명하고 조리가 서 있다. 빈 말이 아니다. '최근 여배우의 활약상이, 이를테면 강수연처럼 예전같지 않다' 는 지적에 바로 반박이 돌아왔다.

"일단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시나리오가 거의 없다. 또 영화제작진들의 상상력 부족도 한 원인이다.

요즘 '세상 끝까지' 에서 김희선이 청순한 역으로 변신한 걸 봐라. 아주 놀랍다. 이처럼 PD나 감독이 하기에 따라 여배우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자꾸 여배우들을 키워야 관객들도 식상하지 않을 것이다. "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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