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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제3장 함부로 쏜 화살

어째서 황태가 팔릴 것을 예측하고 어묵장수를 거들었느냐는 승희의 귓속말에 변씨는, 적선을 하면 필경 화복이 뒤따른다는 부처님 말씀 듣지 못했느냐고 넉살을 떨었다. 한씨네 행중이 내건 현수막에는 '노가리 안주는 팔지도 말고 시키지도 맙시다' 라는 글귀가 커다랗게 내걸려 있었다.

진부령 덕장 안사장의 권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노가리는 부화된 후 일년 가량 자란 명태의 새끼였지만, 전혀 다른 어종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술안주로 인기가 있는 이 노가리는, 우리나라 명태 생산량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잡지 않고 일년만 기다리면, 30㎝ 정도의 성어로 자라기 때문에 노가리를 잡는 것은 연근해의 생태계 파괴는 물론이고, 어업자원의 고갈을 자초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승희는 혼자 장구경을 나섰다. 오랜만의 장구경이긴 하였지만, 신기한 상품들이 난전에 깔린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재래 상설시장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상품들이었다. 다만 낯선 모습이 있다면, 함께 장거리로 나선 부부가 만두와 도넛이나 붕어빵류를 차일막 안에서 직접 빚어 팔고 있는 모습이 띈다는 정도였다.

서울 장충동에서 유명하다는 돼지족발장수도 보였다.

그러나 족발은 이미 조리해서 포장까지 된 것을 팔고 있었고, 만두와 도넛은 단순한 조리기술만 익히면, 감당할 수 있는 장사였다. 한 바퀴를 돌아보자면, 얼추 4㎞가 넘을 것 같은 장터 서쪽 들머리에 이르러서는 대여섯을 헤아리는 시골 아낙네들이 길가에 좌판을 벌이고 앉아 메밀묵을 팔고 있었다.

메밀묵을 보는 순간 군침이 돌았던 승희는 진열해둔 꼬맹이 의자를 끌어당겨 좌판 앞으로 조여 앉았다.

메밀묵 그릇을 건네받아 구리 숟가락으로 퍼먹으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묵을 사먹고 있는 삼십여명의 사람들 중에서 태반은 20대의 남녀들이었다. 대로변에 쪼그리고 앉아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옛날처럼 쑥스러운 행동이 아니라는 인식이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보편화되었다는 방증은 북평장터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한 그릇에 2천원을 받고 있는 메밀묵에 곁들인 양념이라는 것도 자극적일 뿐 맛은 단순한 것이었는데,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면, 추억의 식품에 대한 그들의 호기심도 늙은이들 못지 않다는 증거였다. 승희는 그 좌판 언저리를 냉큼 떠나지 않고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좌판을 차지하고 있는 아낙네들은 썰어서 주워담기에 바빴고, 돈은 건네받아 집어넣기에 바빴다. 남의 주머니에 돈 들어가는 모습이 승희에게도 짜릿하고 고소했다.

장터를 한 바퀴 돌아서 좌판으로 찾아갔을 때는 벌써 파장 무렵이었다.

승희가 돌아본 결과로는 북평장 어디에도 황태를 도매값으로 소매를 하고 있는 난전은 한씨네 행중뿐이었다. 곁에 있던 어묵장수는 벌써 자리를 뜬 뒤여서 훨씬 넓어진 난전은 한씨네 행중 차지가 되어 있었다.

이상하게 황태가 잘 팔린 날이었다. 행중 사람들 모두가 상기된 얼굴로 승희가 나타나서 운수대통한 날이었다고 한마디씩 부추겼다.

아침과 저녁 무렵의 분위기가 그렇게 바뀌고 말았다. 용달트럭에 실었던 황태의 태반이 처분된 결과였다.

그러나 내막을 알고 보면, 모두가 가정 소비자인 장꾼들이 아니라, 재래시장의 건어물 소매상들이 싸다는 소문을 듣고 몰려와 적지 않은 물량을 앞다투어 거둬간 결과이기도 했다. 박리다매에 승부를 걸지 말라는 진부령 한사장의 충고를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도매값으로 햇태를 처분한 것은 한씨네 행중들 면면을 장꾼들에게 익혀두고, 지금은 자본금 증액이라는 그들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깨춤이라도 출 것 같은 사람은 동업한 이래 외장에는 처음 동행했던 윤종갑이었다.

어림짐작으로도 그날의 길미가 백만원은 넘을 것 같았다. 주변의 난전들이 먼지를 털고 떠나고 난 뒤 저녁거미가 떨어질 무렵이 되어서야 좌판을 거두면서 그들은 비로소 점심까지 굶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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