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잭슨, 열 손가락에 챔프 반지 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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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LA 레이커스가 15일(한국시간)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벌어진 미국프로농구(NBA) 챔피언 결정전 5차전에서 올랜도 매직에 99-86으로 승리했다. 레이커스는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15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30득점을 하고 MVP가 된 레이커스의 주포 코비 브라이언트(31)는 섀킬 오닐 없이 첫 우승을 차지, 과거 팀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공룡 센터의 거대한 그늘에서 벗어났다.

1990년대 시카고 불스에서 마이클 조던과 함께 여섯 차례 우승을 차지했던 필 잭슨(64) 감독은 레이커스에서 네 번째 챔피언이 되면서 열 손가락에 우승 반지를 끼게 됐다. 보스턴 셀틱스를 이끌었던 레드 아우어바흐의 최다 우승 기록(9회)을 넘어서 NBA 사상 최다 우승 감독 자리에도 올랐다.

잭슨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시카고에선 마이클 조던과 스코티 피펜을, 레이커스에서 코비 브라이언트와 섀킬 오닐을 데리고 있던 그의 우승은 당연하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네 선수 중 잭슨의 지휘 없이 우승한 선수는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재능은 뛰어나지만 오만한 스타 선수를 제어하는 데 매우 뛰어난 감독으로 볼 수 있다.

그의 부모는 둘 다 목사였고 그는 크리스천이다. 그러나 지도 방식은 동양적이다. 불교의 선(禪), 인디언 명상을 한다. 이를 통해 선수의 마음에 평화를 찾아주고 동기를 불어 넣는다. NBA 사상 최악의 난봉꾼이었던 데니스 로드먼도 그의 밑에선 순한 양이었다. 견원지간인 오닐-브라이언트를 한 팀으로 묶어 세 차례 우승하게 했다. 잭슨과 조던의 관계는 스포츠 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선수 사이로 평가된다. 98년 그가 구단 고위 관계자와 불화로 시카고 불스를 떠난 것이 조던이 시카고 유니폼을 벗게 된 계기였다.

그렇다고 물에 물 탄 듯한 감독은 아니었다. 그는 뉴욕 닉스 선수 시절 악착같은 수비로 부족한 공격력을 메웠다. 75년 NBA 최다 반칙을 한 선수가 잭슨이었다.

2004년 초 브라이언트가 그의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재미없다”고 비웃으며 개인플레이를 했을 때 그는 오만한 스타의 트레이드를 요구했다. 이를 팀에서 거부하자 잭슨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레이커스는 단박에 무너졌고, 브라이언트까지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그는 1년 만에 복귀했다. 잭슨은 NBA 사상 최고 연봉(1000만 달러) 감독이자 함께 뛰고 싶은 감독 설문 1위를 지키고 있다.

심리전도 뛰어나다. 2000년 플레이오프에서 새크라멘토 킹스와 경기를 앞두고 머리를 박박 밀고 온몸에 문신을 한 킹스의 백인 가드 제이슨 윌리엄스를 네오 나치로, 킹스의 감독을 히틀러로 묘사해 흑인 선수들의 투지를 자극했다. 2001년엔 한 선수 팔에 양말을 뒤집어 쓰고 나오도록 해 팔 토시가 트레이드 마크인 앨런 아이버슨을 조롱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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