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장편·소설집 두권 낸 이승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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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세상은 신을 잃었고 문학은 주제를 잃었다. 작가가 상상력을 가다듬기도 전에 세상이 너무도 빠르게 변신한다. 그렇다고 문학이 세상의 식탁에 버려진 찌꺼기들이나 수거하고 다녀야하는지 얼른 수긍이 안된다. 소설가는 무얼 쓰는 작자인가라는 내 자신에 대한 물음에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은 진지하지 못한 것들이다. 작가들이 그런데 글을 낭비하기엔 삶은 너무도 진지하고 신성하기 때문이다. " 작가 이승우 (李承雨.39) 씨가 장편 '태초에 유혹이 있었다' 와 소설집 '목련공원' 을 문이당에서 동시에 펴냈다.

1981년 '에리직톤의 초상' 이 한국문학신인상에 당선돼 문단에 나온 이씨는 장편과 중단편집 10여권을 펴내며 종교적 사유와 인간 내면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오며 젊은 소설의 깊이와 무게를 떠받치고 있다. '태초에 유혹이 있었다' 는 구약성서의 창세기를 문학적 상상력과 찰흙 같이 부드러운 문체로 인간적으로 재구성한 작품. 탄생에서부터 자아발견의 과정까지, 인간이면 누구나 품을 수밖에 없는 인간과 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의문을 찬찬히 풀어내고 있다.

"위험한 것은 선과 악이 아니다. 선과 악에 대한 분열된 지식이 위험할 뿐이다. 그대가 그것을 알기 전에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대가 선과 악에 대해 지식을 가지게 되는 순간 선악은 죽음이 된다. 나뉘는 것은 다 해롭다. 그대는 지금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생명으로 충만한 삶이다. " 나뉨이 없을 때 우리는 행복했다.

그러나 우리는 어머니의 젖가슴.치맛자락을 놓고 세상을 알게되면서 그 행복한 세상으로부터 멀어져 고해 (苦海) 로 내던져졌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을 구별하는 과일을 따먹고 낙원에서 추방됐듯. 이같이 이 작품은 창세기에서 인간의 문제를 끌어내고 있다. 야훼 혹은 하나님은 노여움의 신보다는 인간과 같이 고뇌하며 인간의 존재를 자상하게 알려주는 크게 깨친 자로 등장한다.

카인과 아벨, 바벨탑 이야기를 통해 죄와 법, 지식과 생명, 타락과 구원, 사랑과 죽음 그리고 사회와 언어등 인간과 사회의 모든 문제들을 원초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여덟편의 작품을 싣고 있는 '목련공원' 에서도 이씨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구원, 우리시대의 고향과 이상향을 집요하게 찾아나서고 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무엇인가를 꿈꾸고 기대하고 설계하고 욕망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이 미혹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홀렸다는 증거이다. 홀리지 않고서 우리가 어떻게 살겠는가. 어떻게 살아나가겠는가. " '목련공원' 에 실린 단편 '갇힌 길' 에서 세속적 삶에 갇혀 살던 주인공은 애인의 변심으로 친구를 찾아 천산으로 향하는 주인공의 독백이다.

천산은 '구름과 바람이 태어나는 곳, 구름과 바람과 풀과 나무와 공기가 어울려 천상의 음악을 빚어내는 곳' 이다.

그 곳에 찾아가 주인공은 이상향도 우리의 세속적 삶과 같이 '홀림' 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죽임을 당한다. 이상향, 이제 자신이 어릴적 떠나온 고향을 찾는 것이 비록 홀림과 인간의 욕망으로 죽음에 이르는 길일지라도 그길을 찾으려 이씨는 '목련공원' 에서 헤매고 있다.

그러면서 이씨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과 인간 내면세계의 본질, 그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경철 기자

〈bacch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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