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의혹 세무조사 로비도 규명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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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관련된 사건의 또 다른 핵심 의혹은 세무조사 무마를 위한 금품 로비가 이뤄졌는지다. 여권 핵심 인사들이 박 전 회장에게서 금품을 받고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정치권은 물론 청와대와 국세청을 상대로 실제로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실체 규명에는 실패했다. ‘반쪽 수사’ ‘부실 수사’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특히 검찰이 미국으로 건너간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직접 조사하지 못한 것도 의혹을 부풀린 꼴이 됐다. 이번 수사 과정에서 대검 중수부는 “불법 정치자금을 수십억원씩 사용했던 박 전 회장이 자신의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휠씬 더 많은 돈을 뿌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었다. 또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이 나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는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여권 실세들에 대한 수사는 진척을 보지 못한 것이다. 추 전 비서관은 세무조사 무마 로비와 관련해 박 전 회장에게서 2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검찰이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대선 자금과 관련된 수사는 할 수 없다’고 못박은 점도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검찰이 여권 인사들의 해명만 듣고 수사를 끝낸 것 같다”고 말했다.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박 전 회장의 로비 의혹과 관련해서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건 수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박 전 회장의 ‘여비서 다이어리’에는 100명 이상의 인사가 등장했다고 한다. 이날 불구속 기소된 한나라당 김정권 의원도 “박 전 회장이 차명으로 후원한 수십 명의 정치인 중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며 “박 전 회장이 경남·부산 지역 인사들을 수시로 자택이나 식당에 불러 접대를 했다는 증언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수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박 전 회장의 진술에 의존해 수사해 온 데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인해 수사의 동력을 잃으면서 의혹 규명에 실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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