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스포츠]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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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길 회장이 서울 역삼동 집무실에서 ‘테니스 경영학’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조동길(54) 한솔그룹 회장은 ‘테니스 매니어’를 넘어 ‘테니스 전도사’급이다. 대한테니스협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한솔제지 테니스팀을 만들었고, 국제대회인 한솔코리아오픈을 열어 ‘테니스 요정’ 샤라포바(러시아)를 초청하기도 했다. 테니스 실력도 있다. 한솔그룹 직원들이 참가하는 테니스 대회에서 3위에 오른 적이 있을 정도다.

조 회장은 미국 명문 사립고인 필립스 아카데미에서 유학할 때 테니스를 제대로 배웠다.

당시 미국에서는 존 매켄로, 지미 코너스, 크리스 에버트 등 스타들의 활약으로 테니스가 고급 스포츠로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조 회장은 선수 생활은 안 했지만 동아리 수준에서는 꽤 잘 치는 학생이었다.

미국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연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그는 국내 친구가 없어 한동안 외톨이로 지냈다. 조 회장은 “그때 테니스장에 갔더니 치는 사람이 꽤 있었어요. 함께 테니스를 즐기면서 친구를 사귀었고, 학교 생활에도 빨리 적응할 수 있었죠”라고 회고했다. 당시 함께 테니스를 했던 친구들과는 지금도 매주 수요일에 만나 운동을 한다.

조 회장이 생각하는 테니스의 매력은 ‘존중’이다. 힘과 기술을 총동원해 승부를 겨루면서도 상대를 배려하고, 좋은 플레이에 박수를 보내는 매너를 강조하는 스포츠라는 것이다.

조 회장은 “해외에서는 테니스를 골프보다 더 신사 스포츠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업무차 유럽이나 미국에 가서 ‘한국의 테니스협회장’이라고 소개하면 보는 눈이 달라지고, 협상도 잘 풀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테니스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도 들려줬다. 15년 전 협력업체인 알라바마 리버 펄프(미국)의 조지 란데거 회장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테니스 얘기가 나왔다.

란데거 회장은 “내가 테니스는 프로급이니 상대가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 회장은 “좋습니다. 그럼 펄프 100t을 놓고 내기를 합시다”라고 제안했다. 결국 펄프를 걸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은 다음 날 테니스 경기를 했고, 이를 계기로 두 회장의 지인들이 출전하는 테니스 대회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매년 열리게 됐다.

올해로 15회째를 맞은 이 대회는 테니스에 골프까지 넣어 우승팀이 상금을 양국 자선기관에 기부하는 ‘훈훈한 만남의 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조 회장은 테니스를 경영에 접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기본(펀더멘털)의 중요성이다. “골프는 하위권 선수가 우승하는 이변이 가끔 일어나지만 테니스는 체력과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으면 결코 우승할 수 없습니다. 기업도 재무구조 등 펀더멘털이 튼튼해야 위기에서 살아남고, 호황기에 성장할 수 있죠.”

테니스가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내 반응이 달라지는 것처럼 기업 경영도 항상 고객 생각과 시장 움직임을 잘 파악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테니스를 하면서 터득했다.

조 회장은 우리나라 청소년의 운동 시간이 선진국에 비해 너무 적다고 걱정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한 가지 이상 스포츠를 의무화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법정 체육 시간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한창 키와 골격이 성장하는 청소년기에 스포츠를 통해 몸과 정신이 모두 건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피겨의 김연아, 수영의 박태환처럼 테니스에서도 세계적 스타가 나올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정영재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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