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이전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왜 나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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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02년 9월 30일. 당시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경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와 정부 부처를 충청권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때는 이전 대상으로 청와대와 중앙 부처만 거론됐다. 그러나 그해 11월 19일 발표된 민주당의 '20대 정책목표 150대 핵심과제'는 입법부인 국회도 옮길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사법부가 빠진 데 대해 당시 민주당 관계자들은 "미국의 워싱턴 같은 도시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신행정수도'는 입법부와 사법부를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했다. 사실상 천도(遷都)를 생각한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엔 이 문제가 주목을 끌지 못했다. 민주당은 노 후보의 공약을 줄기차게 '신행정수도 건설'이라고 강조했다. "천도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민주당은 "과천처럼 행정기관이 옮겨가는 수준이고, 서울의 위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입법부와 사법부가 옮겨가느냐의 문제도 쟁점이 되지 못했다.

◇이전 공약은 선거전략=노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하면서 강조한 것은 지방분권.분산이다. 이는 그가 1993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었을 때부터 천착했던 것으로 그만큼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노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뒤 연 첫 정책회의도 국가균형발전에 관한 것이었고, 여기서도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거론됐다는 게 측근들의 회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 이전 공약은 선거전략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측근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노 후보가 신행정수도 건설을 발표했을 때 그의 지지율은 10%대였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율의 절반 정도였다. 당 안팎에선 "정몽준 의원과 후보 단일화를 하라"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던 시기였다. 노 후보에겐 돌파구가 필요한 때였다. 그때 그는 수도 이전 카드를 꺼냈다. 지역적으로 대선 판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충청권의 민심을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수도 이전 공약은 발표 직후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대선 막바지에 가장 큰 이슈로 부상했다. 노 후보가 정몽준 의원과의 단일화를 성사시키고 충청권에선 수도 이전에 대한 기대심리가 높아지면서 이곳 표가 노 후보에게 쏠렸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뒤늦게 심각성을 인식하고 "수도를 옮기면 수도권의 집값.땅값이 폭락한다"며 이를 쟁점화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치공세"라는 노 후보 진영의 반격에 오히려 제압당하는 형국이었다. 수도권 일부 유권자층이 동요하는 기미가 보이자 노 후보는 국민투표 카드로 분위기를 바꿨다.

◇일사천리로 추진=노 대통령은 집권 후 본격적으로 수도 이전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003년 4월 청와대에는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이 발족했다. 건설교통부에는 기획단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하는 지원단이 생겼다. 행정수도건설특별법 초안은 2003년 6월 지원단이 만든 것이다.

입법.사법부의 동반 이전 문제는 지난해 8월 '신행정수도 이전 대상기관 선정'을 주제로 한 공청회에서 구체적으로 제기됐다. 공청회 발표를 위해 연구용역을 맡았던 한국행정연구원은 국회와 법원이 스스로 결정할 사안이라는 것을 전제로 "행정의 완결성을 고려해 함께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이는 같은 해 10월 15일 확정된 정부의 특별법안에 그대로 반영됐다.

특별법안은 지난해 12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 정치권이 17대 총선을 앞두고 서로 충청권의 표를 의식했기 때문에 법안은 무난하게 처리됐다. 노 대통령의 국민투표 약속도 그냥 묻혀버렸다. 한나라당이 문제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수도 이전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특별법이 통과되자 곧바로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도시기본계획과 이전 대상 기관의 윤곽도 나왔다. 지난달 8일 정부는 국회도서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사법연수원 등 구체적 이전 대상 기관을 발표했다. 이어 충남 공주.연기를 수도 예정지로 선정해 발표했다.

노 대통령은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겠다"며 "반대하는 것은 대통령을 불신임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반대세력도 달라졌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 모습이다. 반대세력은 특별법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수도 이전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주목된다.

특별취재팀=김종윤.김영훈(경제부), 강민석.김정하.이가영(정치부), 정형모(메트로부), 이수기(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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