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산하 북녘풍수]14.성불사 <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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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남쪽에서 도선국사 (道詵國師) 의 자생풍수 자취를 찾아온지 여러 해가 됐는데 오늘 정방산 성불사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한겨울이지만 구름 한점 없는 초봄과도 같은 날씨다.

성불사를 제대로 이해하자면 그 사적을 알아야 한다. 다행히 성불사에는 입구에 영조 3년 (1727)에 세워진 '보존 유적 제1127호' 성불사 기적비가 있어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준다. 물론 시대가 너무 차이가 나서 믿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하면서 안내하는 리정남선생의 도움으로 얻은 기적비의 대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방산 앞으로는 큰 파도 일렁이는 바다가 서있고 뒤에는 겹겹이 막아선 묏부리를 끼고 있어 한 사나이가 있어 길목을 막아선다면 만명의 장부도 길을 열 수 없는 곳이다. 성불사란 이름은 사람의 성품을 처음으로 돌린다는 뜻이고 절이 기대고 있는 천성산이란 이름은 인물이 많이 난다는 뜻이다.

옛날 도선국사가 절을 세울 때 산이 솟고 물이 흐르는 형세와 나라의 방위상 중요 지점의 형편을 밝은 안목으로 살펴 가려내 천만년을 지켜나갈 고장을 만들었으니 어찌 다만 절간을 세워 경문이나 외고 중들이 살아가는 데 그치게 하였으랴.

훗날 나옹화상이 세운 전각은 우람하고 찬란하여 옛 일을 똑똑히 더듬어 볼 수 있다. 그러나 절간은 무너지고 남은 것은 이제 한 둘에 지나지 않으니 만물의 성쇠가 애당초 그 운수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시할 대목은 절 입지가 단지 승려들의 명당 터를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방과 주민의 살림을 생각함에 있음을 밝힌 곳이다.자생풍수가 좋은 터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의 병든 어머니를 대할 때 환처 (患處) 에 침이나 뜸을 놓아드리듯 병든 터, 흠 있는 땅을 골라 거기에 절이나 탑을 쌓아 고침으로써 국토를 밝게 하자는 것이 목적이란 주장을 상기하면 그 대목의 중요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절은 청풍루를 정문으로 삼았는데 들어서면 본전 건물인 극락전이 앞을 막는다. 남향으로 정면 3간에 측면 2간인 맞배집이다. 사실 성불사 본전 건물이 남향을 한 것은 이론상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주위 산세를 살펴보면 뭔가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절 뒤, 그러니까 주산에 해당되는 기봉산은 정방산의 최정상이라고는 하나 그 생김새가 수려하지 못해 흔히 절을 의지할만한 산형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우선 그러하다. 거기다 본전 건물을 서향 (西向) 으로 앉혀 응진전 뒷산을 등지게 한다면 기가 막힌 명산형 (名山形) 을 주산으로 갖게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피했다는 점이다.

극락전이 마주하고 있는 약물산은 더욱 문제가 많다. 배치로 보아 약물산은 성불사의 안산 (案山)에 해당된다. 모름지기 안산은 주산을 압도하거나 살기를 띠는 것을 극히 꺼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물산 산세는 한 번 보기에도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깎아지른 절벽인데다 산의 북사면 (北斜面) 을 절을 향해 내보이고 있기 때문에 조명 또한 음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평범한 기봉산을 주산으로 하고 금기 (禁忌) 시해야 할 약물산을 안산으로 삼았을까. 그 대답이 바로 자생풍수에 있다. 이미 앞에서 밝힌 얘기지만 자생풍수에서는 땅을 어머니로 여긴다. 그렇다면 우리 풍수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땅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은 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상대가 필요하다. 땅의 상대는 사람이다.

사람과 땅과의 관계 속에서만 사랑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러므로 도선의 자생풍수에서는 땅 못지 않게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을 모르고 땅을 볼 수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랑은 훌륭한 것, 좋은 것만을 상대하는 일이 아니다. 훌륭하고 좋은 것이라면 나 아니라도 사랑해 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지고지선한 사랑이란 상대가 다른 것에 비해 떨어지는 것, 문제가 있는 것, 좋지 않은 것일 때 의미가 있다. 우리 풍수에서 땅 사랑은 이런 근본적인 인식 속에서 출발한다. 명당이니, 승지 (勝地) 니, 발복 (發福) 의 길지 (吉地) 니 하는 것은 우리 풍수의 본질에서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개념들이다.

결함이 있는 땅에 대한 사랑이 도선풍수가 가고자 하는 목표다. 그것이 바로 비보 (裨補) 풍수이기도 하다. 도선풍수는 땅을 어머니와 일치시킨다. 어머니인 땅이다. 그 어머니의 품안이 우리의 삶터가 된다.

만약 어머니의 품안이 유정하며 전혀 문제가 없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표본 같은 경우라면 어느 자식이 효도를 마다할 것인가. 그것은 효도도 아니고 당연한 되갚음의 의미밖에는 안될지도 모른다.

좋은 어머니는 그 자체로서 완벽 지향적이고, 따라서 이상형이다. 그러나 현실에 완벽이라든가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어머니라도 얼마만큼의 문제는 지니고 있는 법이다. 피곤하실 수도 있고, 병에 걸리셨을 수도 있으며 화가 나 계실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어머니의 품안도 생각해야 한다. 우리 풍수는 바로 그런 완벽하지 못한 어머니, 우리 국토를 사랑하자는 땅에 관한 지혜다.

성불사의 입지 (立地) 또한 예사롭지 않다.성불사는 정방형의 가운데 쯤 위치하기 때문에 큰 비가 오면 물이 모여드는 곳이 된다. 침수의 위험이 매우 큰 곳이란 뜻이다.

거기서 모인 물이 길을 따라 남문으로 빠져 나가게 된다. 그래서 남문에 물길을 두 개나 다시 뚫은 것이었다.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이론풍수가 아니고 자생풍수가 있었음을 받아들이고 성불사의 풍수를 그에 입각해 이해한다면, 성불사가 왜 그런 입지와 좌향을 택했는지는 자명해지는 일이 아닌가.

이미 지나 온 구월산과 정방산이 비교된다. 그래서 내 나름으로 이런 풍수 속담을 만들어 봤다. "굳센 아들을 낳으려면 구월산으로 가고, 예쁜 딸을 낳으려면 정방산으로 가라. "

정방산 정상에 서면 구월산과 바다가 보인다는데 오늘은 중턱까지밖에 올라가지 못했다. 물이 맑고 공기가 좋아서이리라. 점심을 먹고 식곤증이 몰려오는 시간에 산을 오르는데도 피곤함이 없고 숨찬 기운이 금방 가신다. 산 기운은 온화 유순하고 사람들 또한 그러하니 과시 천하의 승지라 한들 시비 걸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당연히 이곳에 있으면 마음도 편안하게 되는 법이니 깊은 시름 있는 이들은 모름지기 정방산 성불사를 찾기를 권한다.

글 = 최창조·그림 = 황창배 사진 = 김형수 〈통일문화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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