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사태] 사면초가 수하르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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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집권 32년째를 맞은 수하르토정권이 사면초가에 처했다.

이번 유혈사태가 갈수록 악화되면서 국민과의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고 군을 제외한 대부분의 세력이 그를 등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하르토는 아직 강경하다.

그는 14일 "국민이 원할 경우 사임할 준비가 돼있다" 며 다소 유화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사임은 그의 진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게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그가 말하는 국민은 국회격인 국민협의회를 지칭하는데 대의원 1천명중 9백여명 이상이 그의 수족들이다.

수하르토정권을 떠받치고 있는 군 수뇌부는 아직 그의 편이다.

비란토 참모총장 겸 국방장관은 30년이 넘도록 수하르토를 그림자같이 보좌한, 말하자면 그의 분신이다.

정치와 군을 조정하는 탄융 정치안보조정 보좌관 역시 마찬가지다.

수비안토 육군사령관은 그의 셋째 사위다.

이밖에 군 요직은 모두 수하르토의 친위세력들이다.

군은 수하르토와 생사를 같이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들은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으로 탈출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

14일 밤 비란토 장관이 민간 사망자는 언급하지 않은 채 "시위진압 과정에서 군인 3명이 숨졌다" 고 발표한 후 유감을 표명했는데 이는 곧 초강경 진압을 예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군 수뇌부와 달리 병사들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14일 자카르타 시내에서 시위를 진압하던 군병사들이 시민들을 향해 악수를 청하며 손으로 V자를 그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는데 이는 곧 군의 내부균열 가능성을 알리는 대목이다.

여기에다 중산층은 물론 야당과 대학교수, 이슬람 지도부까지 시위대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특히 군과 함께 수하르토 정권을 지탱해준 이슬람 지도부가 수하르토의 사임을 공식 요구하고 나서 그의 입지를 더욱 좁게 하고 있다.

IMF관리 체제아래 인도네시아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미국이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도 큰 변수다.

미국은 이미 군사절단을 파견하는 등 개입태세다.

최형규 기자 〈chkc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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