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사태 진세근특파원=6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1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는 야당지도자 메가와티 여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날 경찰 총격으로 숨진 대학생들을 위한 장례식 및 추모식이 열렸다. 그러나 경찰은 이날도 시위학생들에게 발포를 감행, 초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12일 트리삭티대 시위 도중 경찰이 발사한 총탄에 맞아 사망한 학생들의 시신이 안치된 자카르타 서부 숨베르 와라스 병원은 절망과 분노로 가득찼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 구름처럼 몰려든 학생들과 내외 보도진.피해자 가족들이 한데 엉킨 가운데 통곡과 절규에 가까운 구호소리, 헌병들이 내지르는 고함소리가 섞여 커다란 혼잡을 빚고 있었다.

병원 제일 뒤편의 한 병동 앞. 5평 남짓한 한 병실에는 하얀 시트로 덮인 4구의 시신이 나란히 놓여 있었으며 그 앞마당에는 학생 1천여명이 둘러앉아 있었다. 헌병들이 지키고 있는 병실은 굳게 닫혀 있었다. 가족들이 들어갈 때만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하피딘 로야디 (기계공학과3) 군의 어머니 요가는 병실 바깥으로 업혀 나온 뒤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역시 머리에 총을 맞아 사망한 헨드라완 (경제학과2) 군의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을 보기를 거부한 채 땅바닥에 앉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대학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저들은 (경찰) 은 대학캠퍼스 안에까지 들어와 학생들에게 마구 총을 쐈다. " 국문과 멩기 (21) 양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두려움이 아직 가시지 않은 표정이다.

"가두진출을 시도하다 충돌이 빚어져 총탄이 발사된 게 아니다. 우리가 그냥 물러서는 순간 쏜 거다.저들은 살인자들이다. "

한 남학생은 울면서 격렬하게 경찰을 비난했다. 에랑 물랴 레스마나군이 총을 맞아 쓰러지는 것을 직접 보았다는 아구안 (간호학과) 양은 "갑자기 총소리가 나더니 레스마나가 길바닥에 쓰러졌다. 갈라진 머리사이로 뇌수가 흘러나왔다. 그런데도 저들은 계속 발사했다" 고 증언했다.

간호학과 학생회장을 맡고 있다는 아구안은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학생들을 학살하기 위해 자행된 범죄" 라고 규탄했다.

그러나 군과 경찰은 가해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자카르타 시경찰국 대변인 아리토낭 대령은 "우리는 발포하지 않았다. 사망자들은 퇴각도중 넘어져 동료학생들의 발에 밟혀 사망한 것이다.우리는 이런 결론을 뒷받침하는 여러 진술들을 이미 확보했다" 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이날 긴급회의를 갖고 사인규명.학살자 처벌 등을 주장하는 요구서를 경찰당국과 군부대에 발송했다. 시위지도자 아로요 (토목과3) 군은 "오늘을 '국민 애도의 날' 로 선포한다. 우리는 이 날을 계기로 수하르토가 퇴진하고 참된 민주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무기한 전투에 돌입할 것" 이라고 선언했다.

국립 인도네시아대 (UI) 교수 2백50명도 13일 특별성명을 발표, "군과 의회는 즉각 개혁작업에 동참하라" 며 "우리는 학생들의 숭고한 싸움을 적극 지지한다" 고 밝혔다.

자카르타 = 진세근 특파원

〈sk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